『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이사 9, 1)
『오늘 이사야가 외친 놀라운 말씀이 우리 가운데 크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세상은 참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우리 자신의 탄생(?)입니다. 어패 있는 말 같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부부가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기가 없었습니다. 아기가 없으니까 부부뿐만 아니라 시부모님에게도 낙이 없었습니다. 집안이 그렇게 쓸쓸하고 허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13년째 되던 해에 부인이 임신을 하더니 드디어 옥동자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대단한 경사였습니다.
우선 부부가 기뻤습니다. 이제 남편은 아버지가 되었고 아내는 비로소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남으로 인해서 그 부부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시어머니는 할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기 하나로 인해서 온 가족이 모두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그보다 더 위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우리 자신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태어나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새로와지며 또한 우리 인생이 그분 안에 새로와지기 때문에 그분의 탄생이 빛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탄은 하느님의 것이요 또한 인간의 것입니다. 인간은 실로 예수님 때문에 인간다와지는데 그것이 바로 성탄이 주는 의미입니다.
오늘 2독서(디도 2, 11~14)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믿는 이에게나 믿지 않는 이에게나 모두에게 골고루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믿는 이에게만이 그 은총이 살아서 빛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은총의 빛이 환하게 빛나도 눈을 감아 버리면 빛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 유다인들이 그랬습니다.
유다인들은 메시아를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민족이 있었지만 유독 그들만이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막상 메시아가 오자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를 죽였습니다. 이게 바로 신앙의 모순입니다. 얼마나 많은 모순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는지 모릅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주님을 찾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나 정작으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실로 얼마되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서 눈을 다른 곳으로 뜨고 있기 때문에「주님」「주님」하고 부르면서도 주님을 바라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그 안에 탄생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설혹 주님이 그 인생 안에 태어나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태어나실 자리가 없습니다. 베들레헴의 모든 방들은 만원이었습니다. 아무리 사정해도 예수님이 태어나실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하신 곳이 마구간이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이 오늘의 시대에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방이 많지만 정작 예수님이 탄생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 가난한 사람은 그분의 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부인이 찾아와서 자신의 사업이 실패한 얘기를 하면서 울었습니다. 듣고 보니 딱했습니다. 처음에 화장품 장사를 했지만 손해만 봤고 나중엔 음식 장사를 했으나 빚만 몽땅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없이 혼자 자식들과 함께 살자는 일이 다 그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망의 시기에서 구원의 빛이 왔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 번은 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성당에 들어갔는데 마당 한쪽에 모셔진 성모 상이 그렇게 편안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오랫동안 위로를 받고 수녀님을 찾았더니 수녀님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부르셨다고. 그리고 수녀님의 말씀 한 마디가 그녀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날부터 그 자매는 가슴 안에 예수님을 모셨으며 예수님을 모신 날부터 그녀는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 안에 태어나시자 자매가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녀는 다시 일어섰으며 한동안 파출부를 나가다가 지금은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데 그냥 먹고 살만은 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 안에 탄생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웠던 분들, 가난하고 외로왔던 분들, 그리고 병들어 고생했던 분들에게서 그분은 태어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밤 천사가 그랬습니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루가 2, 11). 여러분이 바로 다윗의 고을입니다.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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