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술년 새해, 가톨릭신문은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사랑의 고리」역할에 보다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다사다난했던 94년 한 해를 반성하는 이 시간, 가톨릭신문이 한 해 동안 다짐해 온 나눔활동을 결산해 봄으로써 사랑을 주고받은 이들이 이뤄낸 나눔의 기적을 소개하고 아직 춥고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우리의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불러일으켜 본다.
가톨릭신문은 올해 이 사회의 가난하고 어두운 곳에 사랑의 손길이 연결될 수 있도록 그동안 실시해 오던 호소란을 쇄신, 「사랑의 손 잡기 운동」캠페인을 시작했고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이룩하자는 취지에서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는「나눠 줄 사랑 없나요」를 신설했었다.
그래서 94년 한 해 동안 총 9명이 이웃이 건네는 따뜻한 사랑의 손들을 서로 굳게 잡고 다시 일어서서 함께 걸어가는 기쁨을 맛 보았으며 또한 14개 시설이 필요한 물품과 성금을 나눠 받음으로써 보다 나은 생활 여건을 조성하게 됐다.
나눔의 기회가 많아진 만큼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가난과 질병의 고통과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고 나눌 만한 여유를 갖게 된 만큼 도움을 요청하는 해외 교포와 지구촌 가족들도 많았다.
8월 초부터는 내전으로 인해 기아와 질병이라는 죽음의 골짜기를 넘나드는 르완다 난민들을 위한 특별모금운동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와 함께 전개함으로써 무려 3억8천여만 원이란 성금을 접수 받았다.
◆나눔 지구촌 곳곳에
또한 가톨릭신문은 사순기간 동안 동유럽 교회의 최빈국의 하나인 알바니아 교회 돕기 모금운동에 나섰고 1천2백여 원이란 성금이 답지했다. 주한 교황청 대사를 지냈고 현재 알바니아 주재 교황 대사로 근무하는 이반디아스 대주교의 특별 요청으로 진행된 이번 모금운동에서 모아진 성금은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세워질 병원 건립을 돕기 위해 쓰여지며 올 연말 주한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전달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우리말로 미사 봉헌을 하고 싶다』며 성전 건립 도움을 오청해 온 중국 목단강시 신자들과 평생의 동반자를 구하는 경추 골절 전신마비 장애인 구회씨에게 도움이 전해졌다.
이렇게 내 것을 보잘 것 없는 이에게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성원과 관심으로 올 한 해는 어느 해보다 나눔이 풍성한 한 해였다. 아니 나눔의 기적을 경험하는 은총의 해였다.
사랑의 가교 역할을 다짐한 가톨릭신문이 올해 사랑의 손 잡기 운동을 시작하며 처음 취재, 보도한 곳은 바로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 위치한 나환우들의 정착촌 「상록마을」이었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설상가상으로 다가온 불운은 93년 성탄을 3일 앞둔 12월 22일 때아닌 화재로 연립주택 1동이 모두 전소됐고 네 가구가 집과 가재도구를 모두 잃어 오갈 데 없어진 것이다.『타버린 집을 다시 짓기 위해서는 공사비가 6천여만 원이나 된다.』며 절망하고 있던 나환우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가톨릭신문 1월 16일자에 전해지자 여기저기에서 온정의 손길이 밀려왔다.
본사는 이렇게 모아진 성금 1천1백여만 원을 상록촌에 직접 전달했고 상록촌은 이웃들의 따뜻한 사랑에 눈물 흘리며 재건의 의지를 다졌다. 상록촌 사람들은 드디어 전소된 집을 허물고 시멘트 블록으로 새 집을 지어 지난 여름 입주했고 지금은 가스 폭발로 지난해 이맘 때 자신과 같은 처지를 겪고 있는 아현동 이재민들의 겨울 나기를 걱정하며 기도를 바치고 있다.
◆「나눔의 기적」체험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던 사람들도 갑작스레 화마나 병마의 고통이 겹치면 결코 쉽게 떨치고 일어서지 못했다.
특히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육체적 고통을 안게 된 이들은 하루 빨리 수술을 받거나 재기를 위한 조치가 절박하다 보니 주위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사랑의 손잡기 운동에도 예년처럼 이러한 사연의 이웃들이 가장 많았다. 사랑의 손 잡기 운동 제2회에 바로 감전 사고로 하반신마비 장애를 겪고 있던 남기용(40ㆍ요셉)씨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월세 수입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려가던 남씨는 최근 방광염 증세가 악화돼 용변을 보기 조차 힘들었으나 7백만 원 하는 수술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한숨만 쉴 뿐이었다. 1월 30일자에 남기용씨의 사연이 보도된 후 남씨의 소속 본당과 독자들의 성금이 답지, 3월 16일 대구 가톨릭대학 병원에서 소망하던 수술을 받고 방광염이 완쾌됐다.
『가톨릭신문 독자분들과 본당 교우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밝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남씨는『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과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했다.
다섯 살, 일곱 살 난 두 자녀와 처를 부양하기 위해 막노동을 하다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박태준(32ㆍ예비자)씨, 백혈병을 앓고 있는 인천 송림4동 본당의 백두용(12ㆍ이사악)군, 심부전증으로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전남 목포의 박홍재(12)군 등의 이야기도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신부전증으로 신장 기증자와 수술비를 애타게 기다리던 부산 하단본당의 곽복두(32ㆍ스테파노)씨와 17살 꿈 많은 소녀인 대구 고성본당의 모경진(마리아)양, 6년여 간을 신부전증으로 고생해 온 춘천 양양본당 오윤석(55ㆍ베드로)씨의 이야기도 전해졌다.
특히 누나가 7년 전 교통사고로 죽고 혼자 남은 두용이마저 백혈병에 걸렸으며 생계마저 어려워 폐농양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생업에 나선 이 가정의 절박한 사연이 알려지자 4백70여만 원의 성금이 접수됐으며 6백만 원하는 의수 비용을 엄두도 못내던 박태준씨에겐 1천2백만 원의 성금이 답지, 고대하던 의수 착용은 물론 올 7월부터는 부부가 함께 보험 모집원으로 일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상록촌」재건 활기
새해 들어 이웃 간의 정을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의 일환으로 새롭게 시작한「나눠 줄 사랑 없나요」는 가톨릭신문이 교회 언론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기획한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과 관심이 연일 쇄도했다.
자신에게 별 쓸모가 없거나 덜 필요한 물품을 갖고 있는 여유 있는 이웃과 이러한 물품을 더없이 긴요하게 사용할 가난한 이웃이나 불우 복지시설을 중개하는「나눠…」가 1월 16일 12면에 첫 보도됐다.
구타 당하는 아내들을 위한 일시적 쉼터인 「여성의 쉼자리」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의 옷가지를 정리할 서랍장과 TV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 주 만에 수십 건에 달하는 물품과 지원금이 쏟아졌다.
가구점을 운영하는 신자가 서랍장 세트를 보내주는가 하면 물품을 구입하라며 성금을 보내준 독자, 여성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동참하겠다며 20인치 텔레비전을 구입해 기증한 교수, 개신교 신자에 이르기까지 넘치는 사랑의 기적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뿐이었다.
이후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정신지체 장애인 가정 공동체「사랑손」, 녹음기와 헌옷이 필요하다는「여주 라파엘의 집」, 공부할 책걸상이 필요하다는「성모자애보육원」과「작은 누리 공부방」,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비디오가 필요하다는 무의탁 노인시설「섭리의 집」에 이르기까지 불우 청소년, 장애인, 노인, 행려자 등 다양한 복지시설이 도움을 요청해 왔다.
가난한 맞벌이 부부를 위한 영아 탁아소를 마련하는「평화의 집」은 보일러 시설, 놀이 기구 등을 보내줄 후원자를 찾았고 정신지체 장애인 시설인「가난한 마음의 집」은 그룹홈 마련을 위해 냉장고, 옷장 등을, 경남 진양군에 위치한 반송종합고등학교는 농촌이라는 문화 불모지에서의 청소년 교육을 위해 책 시청각 자료 등을, 행려자들을 위한 의류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성가복지병원에서는 헌 옷을, 불의의 화재를 입은 성 황석두 루가 전교회에서는 벽돌 한 장을 나눠줄 은인들을 애타게 기다렸다.
◆연일 쇄도하는 성금
『이런 기다림 뒤엔 어김없이 전국 각지에서 정성과 사랑이 다가왔다』며 감사의 말을 전하는 복지시설들의 전화가 가톨릭신문에 계속 이어졌고 가슴 뿌듯함을 느끼던 순간들이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매번 어김없이 통장에 작은 정성들을 보내주는 독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나눔의 기적은 엄청난 액수의 성금이나 화려한 물품 때문이 아니라 작은 것이지만 이웃과 나눔으로써 함께 평화롭고 기쁜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는 소박한 마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지난해 12월 28일 생후 6개월부터 앓아오던 선천성 면역결핍증으로 병원과 집을 오가다 결국 사망한 한 작은 천사의 성금은 우리에게 나눔의 진정한 의미와 자세를 가르쳐 준 일화였다.
◆온정으로 사회 복구
고 이재구군(93년 11월 21일자 보도)의 사망 소식을 미처 알지 못한 서울 청담동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지난해 대림절 동안 모은 성금 1백20여만 원을 전달 받은 재구군의 어머니 김경은(데레사)씨가 『재구와 같은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그 반액을 가톨릭신문에 기증한 것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반액도 재구군이 치료를 받던 영동 세브란스병원에 기탁한 김씨의 나눔은 우리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가져다 줬다.
아들과 겪은 김씨의 가슴 아픈 고통을 여러 이웃들의 사랑으로 감싸주고 김씨가 행한 작은 나눔이 절실히 도움을 호소하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하는「사랑의 고리」역할이야말로 이기적이고 각박한 이 시대를 밝고 따뜻한 사회로 이끌어가는 지름길임을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아울러 앞으로도 이러한 풍성한 나눔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교회 언론의 사명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새롭게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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