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늘은 예수 부활 대축일입니다. 사도 10,39에서 베드로가 증언하듯이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신 날입니다. 사도들은 이 모든 일의 증인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사도들의 부활 증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증언한 부활 신앙을 받아들여 세례를 받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도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분명히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고 말입니다.
예수 부활과 관련해서 당시 유다인들은 제자들이 몰래 시체를 숨기고서 부활했다고 떠든다는 소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인들이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었다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을 처음 발견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유다인들은 여인 100명이 증언해도 공적인 증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도 제자들은 여인들이 부활을 처음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만약 제자들이 시신을 숨긴 뒤 속이려 했다면, 유다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남자들, 곧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이 보았다고 증언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복음서가 여인들이 빈 무덤을 처음 보았다고 증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활 증언에 약점이 될 만한 요소였지만 여인들이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었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후 여러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모든 백성에게 다 나타나신 것은 아닙니다. 사도 10,41에서 베드로가 증언하듯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증인으로 미리 선택하신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과연 그들의 증언은 참된 증언일까요?
제자들의 증언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겁에 질렸던 이들이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 목숨도 기꺼이 내어놓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어떤 이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엑스자형 십자가형에서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과연 거짓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겠습니까? 피로 증언한 제자들을 보면 그들이 무엇인가를 보았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는 지금 목숨을 걸고 증언한 이들의 증언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 선택과 결단은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부활을 깊이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부활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강렬한 부활 체험은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부활을 강하게 체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부활 자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곳곳에는 여전히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언하는 예수님의 증인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부활은 여전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재입니다.
부활 대축일을 맞아 우리도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합시다. 그리고 부활을 믿으며 각자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며 살아갑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