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부활 특집] 수원교구 전례꽃꽂이연구회 회장 남아정씨
“겨울 이기고 활짝 핀 꽃… 부활 기쁨 표현하기엔 제격이죠”
사순시기, 제대 앞 비워 장식 최소화하고
부활 때엔 1년 중 가장 화려하게 꾸며
매년 반복되지만 ‘새로움’ 위해 기도·묵상
헌화회 활동을 하며 20번 이상의 부활을 맞은 남아정씨. 현재는 교구 전례꽃꽂이연구회 회장이자 송탄본당 헌화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봄은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시기다. 그래서인지 세상에 생명 가득한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은 세상에 새 생명을 가져다 준 그리스도의 부활과 닮아 있다. 우리나라는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철에 부활을 맞기에, 꽃을 통해 부활을 묵상하기에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특히 부활의 기쁨을 꽃으로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제대에 꽃을 봉헌하며 전례를 더욱 풍성하게 꾸미는 헌화회 회원들이다. 교구 전례꽃꽂이연구회 회장이자 평택대리구 송탄본당 헌화회장으로 활동 중인 남아정(마리아·61)씨를 만나 ‘꽃으로 기도하는’ 부활 이야기를 들었다.
“부활 때의 꽃꽂이에는 ‘설렘’이 있어요. 1년 중 가장 큰 축제니까요. 평소보다도 더 화사하게 꾸며서 예수 부활의 기쁨을 표현해요.”
해마다 예수부활대축일이 다가오면 남아정 회장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꽃꽂이를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순시기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와 단식을 실천하는 시기인 만큼 전례 안에서 대영광송, 알렐루야 등 기쁨을 드러내는 성가도 부르지 않는다. 전례꽃꽂이 역시 제대 앞 장식을 완전히 비우거나, 사순을 묵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징물을 두는 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사순시기는 헌화회원들이 활동을 잠시 중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남 회장은 “평소에 제대를 보면 어떤 전례꽃을 채울지를, 제대 앞에 놓인 전례꽃을 보면서 어떻게 고칠지를 생각하는데, 사순시기에는 제대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멈추게 된다”면서 “사순시기에 제대가 비면 꼭 나를 비우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반대로 사순시기가 끝나는 부활시기 전례꽃꽂이는 헌화회의 연중 최대 행사다. 평소의 전례꽃꽂이 형태를 고려하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민다. 부활시기만큼은 제대뿐 아니라 감실이나 독서대 등도 꾸며 제대 전체를 꽃으로 수놓는 곳도 있다.
규모도 크고 가장 큰 기쁨을 표현해야하는 만큼 각 본당 헌화회는 회원 전원이 머리를 맞대 전례꽃꽂이를 구상하고 이르게는 2주 전쯤부터 전례꽃꽂이를 위한 소품제작에 들어간다.
“제대에 놓이는 전례꽃은 다른 꽃꽂이와는 달라요. 기도 안에서, 말씀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다시 태어나는 꽃이에요.”
꽃은 그 자체가 지닌 상징적 의미만으로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선물한 기쁜 소식을 알려준다. 겨울을 이겨내고 피워낸 그 생명력과 꽃 자체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과 그분이 주시는 희망을 기억하게 해준다.
교부 암브로시오 성인도 “예수께서는 마치 장려한 여명 속에 어머니 품에서 나온 향기로운 꽃처럼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올라오셨다”라며 이사야서에 등장한 ‘꽃’을 세상을 구원하러 온 그리스도로 풀이하기도 했다.
꽃은 제대 앞에 봉헌되면서 좀 더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한다. 전례꽃꽂이는 단순히 제대를 아름답게 장식하는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전례꽃꽂이는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시각적으로도 전례를 느끼고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를 위해 헌화회원들은 그 주의 전례를, 그 주의 성경 말씀을 묵상해 꽃꽂이에 표현한다.
남 회장은 “간혹 꽃을 잘라 죽이는 일을 왜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신데, 꽃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전례꽃꽂이를 통해 누군가의 기도와 묵상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꽃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한다”면서 “전례꽃꽂이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묵상에 도움이 됐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는 신자들을 만나면서 꽃이 정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언뜻 꽃을 꽂으며 제대를 장식하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게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헌화회의 활동은 허드렛일이 많은 봉사다. 꽃을 꽂는 일만이 헌화회 활동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례꽃꽂이를 하는 날이면 헌화회원들은 새벽같이 꽃시장을 찾아가 좋은 꽃을 구매해온다. 새벽부터 꽃시장을 찾는 건 꽃을 최대한 오랜 기간 싱싱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꽃꽂이가 가장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3~4일 가량이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제대를 꾸미기 위해서는 그날 준비한 신선하고 좋은 꽃을 사는 과정은 필수다. 꽃을 꽂아 놓을 재료들과 주변을 꾸밀 소품들도 미리 준비해놓아야 한다. 지난 주 꽃꽂이를 철수하고 정리하는 일 역시 헌화회의 역할이다.
꽃꽂이를 마쳐도 헌화회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중간 중간 꽃꽂이의 상태를 보고 손질을 해줘야한다. 또 다음 주간의 전례에 맞춰 꽃꽂이를 구상하고, 구상한 내용을 스케치해 헌화회원들과 공유하면서 회의를 한다.
이런 헌화회의 노고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신자들이 성당에 없는 시간에 활동하기 때문이다. 헌화회원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전례꽃꽂이마저도 전례에 방해되지 않도록 화려한 표현을 자제하기 때문에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신자들도 많다.
하지만 남 회장은 헌화회 활동이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조용히 꽃꽂이를 하면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고 말하는 남씨는 매주 전례와 말씀을 묵상하면서, 또 꽃을 꽂으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꽃꽂이를 통해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과 봄꽃으로 남아정씨가 만든 전례꽃꽂이. 남아정씨 제공
칡넝쿨과 봄꽃으로 새생명을 표현한 부활 꽃꽂이. 남아정씨 제공
“전례꽃꽂이를 하면서 전례의 의미가 예전과는 또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번 부활도 그래요.”
올 부활 시기가 다가오자 남 회장의 마음은 또다시 분주해졌다. 헌화회원으로서 벌써 20번 이상 맞은 부활이다. 매번 같은 전례 시기가 돌아오지만 전례꽃꽂이는 늘 같을 수 없기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부활이라는 상징을 잘 살리는 소재가 한정적이기에 그 안에서 새로움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회장과 헌화회원들이 만드는 꽃꽂이는 늘 새롭다. 그 시기 그 시기에 전례를 새롭게 묵상하기 때문이다.
남 회장은 본당 헌화회원들과 함께 ‘깨고 나오는’ 이미지를 표현하기로 했다. 그는 “올해는 계란을 깨고 나오는 모습으로 제대를 꾸밀 예정”이라면서 “이번 전례꽃꽂이에는 내 자신의 아집이나 편견 등,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내가 깨야할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한 묵상을 담으려 한다”고 말했다.
“오늘도 제대 앞에서 봉사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앞으로도 신자들이 제대 앞의 전례꽃꽂이를 통해서 성당에서 기도하는 데, 전례와 말씀을 묵상하는 데 도움을 받으실 수 있도록 봉사하려 합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