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하느님, ‘창세기’라고 제목이 붙은 당신 원고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그 상태로는 출판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차후에는 생각의 표현과 정보 전달에서 좀 더 엄격성과 정확성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몇몇 기본 사항들에 관해 잘 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만일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드신다면 말이죠. 당신 창작의 결과를 보니, 우리로서는 천만 번 만류하고 싶습니다만.”
이 글은 소설 「쿰란」의 저자인 엘리에트 아베카시스가 하느님께 보낸 편지의 일부로, 르네 기통이라는 프랑스 저널리스트가 엮은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한국어 번역 : 「내 영혼을 밝히는 물음」, 마음산책, 28~30)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저자는 이 글에서 기아, 자연재해, 죽음, 전쟁을 예로 들며 과연 이 세상이 창세기가 말하는 ‘하느님 보시기 참 좋았던’ 세상인지 묻습니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항변이라기보다는 현대의 지성인으로서 하느님 앞에서 세상의 어두운 실재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글이라 할 것입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지성인들이 하느님께 보낸 다양한 편지글이 실려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하느님께 편지를 쓰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이 시대를 사는 지성인으로서 세상으로부터 눈을 가리지 않으려는 솔직함과 하느님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합니다.
그들이 지녔던 솔직함과 용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더더욱 요청되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이 시대는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이며,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다른 한편 지구촌 곳곳에는 오랜 전쟁과 기아로 난민이 속출하고 있으며, 지구촌 전체가 핵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 인류와 운명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가 희망하는 하느님 나라는 지구촌 공동체의 운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 그는 세상을 등진 채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홀로 구원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는 더더욱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이 되어 우리와 똑같이 사신 것처럼, 우리 역시 이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함께 물음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현대인이 신앙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단순히 ‘호교론’적으로 방어하고 하느님을 변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질문들에 담긴 현대인의 생각과 체험에 공감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과 함께 묻고 찾아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구도자의 자세를 통해서만,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화와 그 신비의 깊이를 깨달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자렛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늘만이 아닌 땅에도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어봅시다. 그리고 물어봅시다. 내가 믿는 예수님과 하느님 나라를 과연 이 시대 사람들에게 선포할 수 있을까요?
르네 기통이 하느님께 편지를 쓰라고 제안한다면, 우리는 어떤 내용의 편지를 쓸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