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소설가는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4월의 끝’이 당선되고 1973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모집에 ‘해빙기의 아침’이 입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유민」 「푸른수첩」 「말 탄 자는 지나가다」 「모래 위의 집」 「4백년의 약속」 「거리의 악사」 「바다로 간 목마」 등이 있다. 「부초」로 제1회 오늘의 작가상, 「타인의 얼굴」로 제36회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군함도」는 30년 가까운 끈질긴 취재와 집필, 재집필으로 엮어낸 역작이다. 이 소설은 방대한 자료와 작가적 상상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인간 개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죄악의 덩어리를 ‘기억’할 것을 호소한다. 나아가 “어떤 고난 속에서도 인간은 창조적으로 재생한다”는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써 우리에게 올바른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다지게 한다.
“그간 포기했던 작업을 다시 시작할 결심을 했습니다. 가톨릭문학상 수상은 기특한 생각을 했다는 하느님의 칭찬인 것 같습니다.”
강제 징용과 원폭을 소재로 다룬 「군함도 1, 2」로 제20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한수산(요한크리소스토모·72). 그는 최근 다시 소설 최양업에 매달리고 있다.
한 작가는 지난 2008년 소설 ‘아, 최양업’을 가톨릭신문에 연재하던 중, “순교자를, 신부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면서 고심하다 도중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기도하던 중 ‘가슴으로 말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어쩌면 그에게 건네는 주님의 말씀일 수도, 혹은 가슴 속의 갈망이 스스로를 깨우는 말일 수도 있었다. 완전히 포기한 줄 알았던 작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4월 20일부터는 열흘 일정으로 최양업 신부가 사제품을 받기 전 오갔던 압록강, 훈춘, 소팔가자 등을 방문한다. 한 작가는 “여전히 ‘신부’라는 존재를 모르겠다”면서 “이번 소설에는 최양업 신학생이 부제품을 받는 시점까지만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작가가 세례를 받고 순교자들에게 빠져들기 시작한 무렵, 그는 필생(畢生)의 작품 소재가 될 ‘군함도’와 인연을 맺게 됐다. 1989년 가을, 그는 동경의 한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작은 책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로부터 27년 동안 엄청난 양의 취재와 집필, 재집필의 과정을 거쳐 소설 「군함도」가 탄생했다.
“우리의 삶 하나하나를 파괴하는 것은 일본, 일본인, 친일파와 같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대상이 아니라, 그들 뒤에 도사린 제도, 환경, 집단 등 거대한 죄악의 불가해한 덩어리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죄악의 덩어리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는 질문과 동시에 “불행과 불평등, 삶을 뒤흔드는 압제를 감내하면서까지 살아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싸워야 할 때 그 싸움을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일어나 싸워 스스로를 지키고 그 가치를 위해 자신을 불사를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사라고 해서 “지겨우니 이제 좀 그만하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문화적 기억’이 필요하다.
“과거를 살아있는 오늘의 문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기억’이 나서야 합니다. 소설이 이야기하고 영화가 환기시켜서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고, 연극과 뮤지컬이 슬픔으로 눈물짓게 하고, 노래와 춤이 과거의 화석화를 막고 끊임없이 현재의 것으로 되살려 놓아야 합니다.”
최근 시국과 관련해 ‘세월호’ 참사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서울 광화문 인근 내자동에서 머물던 작가는 여러 번의 눈물겨운 체험들을 기억한다.
“어쩌면 그렇게 정확한 주장을 어찌 그리 평화롭게 할 수 있었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작가는 “그 성숙한 시민 의식과 정의감이 사회 안에 온전히 자리 잡도록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이 대권 쟁탈에 돌입해 버린 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말했다. 또 오늘날 한국 교회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교회가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권했다.
“교회가 가장 활기가 넘칠 때는 바로 고통을 겪는 사회와 함께 있을 때였지요. 시대의 아픔에 교회가 손 놓고 있을 때, 복음화는 힘을 잃을 것입니다.”
기억을 이어가는데 ‘작가’만이 기여할 바는 아니지만, ‘작가’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할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가톨릭문학’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가톨릭신자 작가들의 소명이다. 종교는 어떤 의미에서 ‘기억’을 매개로 한다. 그리스도교는 2000년 전의 예수라는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되살리고 현재화한다.
작가는 “한국 ‘가톨릭문학’과 관련해,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가톨릭신자 작가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우리 동네’ 이야기에 그친 감이 있습니다. 참된 가톨릭문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가톨릭문학으로까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톨릭문학에는 우선 ‘원죄 의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작가는 “인간이 갖는 고통과 죄의 근원을 인식해야 하고, 그 다음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말씀, 자비와 사랑에 대한 깨우침이 가톨릭문학의 원형을 형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