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는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엄청 크게 나, 감기 환자가 많이 늘었습니다. 북반구와 남반구는 계절이 반대라는 것 기억하시죠? 한국에 벚꽃이 만발하면 이곳은 가을이 무르익습니다. 그렇지만 산티아고의 단풍은 예쁘게 물들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역시 멀리 나와 보고서야 알게 됩니다.
남미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습니다. 저의 서품동기 신부인 박경환(바오로) 신부가 새로 파견됐습니다. 앞으로 1년간 언어연수와 선교지 적응을 하고 내년부터 페루 시쿠아니 교구에서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남미에 처음 도착한 박 신부를 어학원에 등록시키기 위해서 제가 함께 볼리비아로 갔습니다. 볼리비아에는 메리놀선교회에서 선교사들을 위해 만든 어학원이 있습니다. 남미에서 가장 유명하고 전통있는 어학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3년 만에 만나는 동기와 함께 페루부터 볼리비아까지 시간을 보내면서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록 같은 곳에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대륙에 동기가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기분 좋게 볼리비아에 다녀오니 바로 성주간이 시작되었네요. 성주간의 시작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칠레교회에선 그 어떤 미사보다 성지주일 미사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부활이 가장 중요한 미사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이날 미사에 더 많이 참례합니다. 왜냐하면 이날 자신들이 준비한 성지가지를 축복받고, 그것을 집에 모셔둬야 하기 때문이죠. 마치 부적 마냥 반드시 그것을 축복받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사제가 뿌려주는 성수를 못 받을까봐 사제가 지나가는 통로에 다들 모여 와서는 성수를 뿌려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의 행렬.
이런 잘못된 생각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지주일은 참으로 이들에게 의미 있습니다. 이날은 각 공소마다 미사를 봉헌하는데 저마다 가지를 흔들며 온 동네를 행렬하기 때문입니다. 노래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재연합니다. 온 동네를 행렬하는 동안 신자 중 누구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노래하고 가지를 흔드는 것도 인상적이고, 신자가 아닌 그 누구도 길을 막는다거나 시끄럽다 욕하지도 않습니다.
그 안에서 저 혼자 굉장한 낯섦을 느끼게 됩니다. 한국이라면… 과연 이렇게 당당하게 행렬할 수 있을까? 남들에게 피해주면 안 된다는 핑계로 우리가 너무 많이 움츠리고 소극적이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안 되겠지만 우리가 가진 신앙을 보여줄 때에 보다 당당하고 용기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성호를 그으며 식사기도를 하는 작은 것부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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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훈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