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사가에 의한 복음서가 4복음서중 제일 먼저 기록됐다. 그로부터 약 10년후 마태오가 그리고 같은 시기에 루가가 복음을 기록했으며, 그후 백년경 요한이 복음서를 썼다.
이들 복음사가들은 신학자와 신비가의 입장에서, 이미 있던 기록들을 되돌아 보면서 판단하고 계승ㆍ발전시켜 왔다.
우리는 이 4복음사가들의 출생, 직업과 삶에 대한 적잖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림과 상징으로 그들의 개성과 영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리스도교 예술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4세기이래 사람들은 상징이나 표상으로 이 복음사가들을 표현했다. 이러한 묘사는 우선 로마ㆍ라베나ㆍ아킬레이아의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교회를 장식한, 훌륭한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로마네스크나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거대한 성당의, 예술적으로 조각된 석조 기둥머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아일랜드의「켈스의 책」(Book of Kells)에서부터, 그리스도교화된 유럽을 거쳐 그리이스 아토스수도원의 도서관에까지 전해진 많은 채색 삽화에서도 발견된다.
상징이란 짜맞추는 것이고 어떤 관련이 있음을 지시하는 것이며, 영원에 대한 암시이자 기호이다.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들을 눈여겨 본다면, 자신들은 남들이 이 상징들을 이해할 수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 미술품은 이러한 상징들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아는 것만을 보기 때문에 이 상징들의 가치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 상징을 이해하는 데 불가결한 많은 것들을 오늘날의 우리는 더이상 알지 못하고 잃어 버렸다. 우리의 추상적인 생각은 이러한 직관을 할 기회가 거의 없고 다른 많은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사물을 통찰하는 눈이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사자」「독수리」「황소」「사람」의 이 네 상징을 옛부터 4복음사가들에게 부가했다. 그리스도교 예술가들은 그 상징속에 포함된 그림과 숫자의 상징적 의미를 고대 그리이스와 로마시대의 것에서 따왔다. 위대하고 성스러운 숫자4는 큰 강유역의 농경민족들에게는 우주의 조화된 완전성, 신들의 세계제국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바빌로니아의 태양신 샤마시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샤마시가 세계의 네 귀통이를 하늘에 매달았다고 하며, 사람들은 12궁별자리중에서 사자ㆍ황소ㆍ독수리와 물병자리 사람이 세계의 한계선을 결정짓는 것으로 보았다. 하늘의 네방향, 네가지 요소, 네가지 바람 등 도처에 성스럽고 위대한 4자가 나타난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이야기에 서도, 에덴동산에서 발원하여 그물로 땅을 비옥하게 하고 축복을 가져다 주는 네 줄기로 갈라진 강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그림은 이러한 비교를 암시하고 있다, 네 줄기의 강이 4복음을 전세계 땅끝까지 실어 내보내는 그림이다.
바빌로니아의 하늘의 상징을 구약성서의 다른 부분, 예를들어 어제키엘서에서도 볼수 있다. 예언자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영광을 불의 구름속에서 보았고, 그 속에서 그는 사람 사자 황소 독수리의 네 얼굴을 가지고 날개가 넷 달린 동물을 보았다. 팟모스의 에언자 요한도 이 신비스런 네 동물들을 보았던 것이다.
■ 마르코
가장 오래된, 그리이스어로 쓰여진 복음서는 초대교회의 구전에 의하면 마르코가 썼다. 예루살렘 출신의 요한 마르코는 초세기 예루살렘에서 신자공동체가 형성된 집의 마리아라는 부인의 아들이라고 한다. 마르코는 바르나바의 친척이자 바오로 사도의 동료였고, 후에는 베드로 사도의 동료가 되기도 했다. 그가 로마에서 복음서를 썼다는 것 또한 초대교회의 구전이다. 예루살렘 멸망때 마르코복음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이 복음은 기원후 약70년경에 형성되었음이 확실하다. 마르코는 이 복음서를 이방인과 이방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해 썼다. 마르코는 예수님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들 특히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과 비유,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이야기들, 수난에 대한 단독적인 말씀들과 증언들을 수집했다.
그는 한가지 주제를 시간적으로 정확히 정리했다. 그의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출현으로부터 시작, 부활절 아침에 여인들에 의해 빈 무덤이 발견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오늘날 볼 수 있는 결말 부분(마르코16, 9~20)은 2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첨부되었다. 마르코는 무엇보다도 곤궁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박해 속에서도 뜻을 바꾸지 않으셨다고 하면서 용기를 주고자 했다. 축일은 4월 25일이다.
■ 마태오
첫번째 복음서는 마태오를 복음사가라고 일컫고 있다. 마태오복음 9장9절과 10장3절은 마태오를 열두사도의 한명으로 부르심 받은 가파르나움 출신의 세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오는 세리를 마르코 복음과 루가 복음에 나오는 레위와 동일시 했다. 초대 교회의 구전에 따르면 마태오는 처음에 복음을 히브리어로 썼다고 한다. 그러나 그 복음의 원문은 보존되어 있지 않다.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은 그리이스어로 집필된 것이고 마르코 복음을 본보기로 삼았다. 그는 또한 루가도 이용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수집한 그리이스어 판 어록을 이용했다. 그 문헌은 분실되고 없다. 그외에 마태오는 마르코 복음이나 루가 복음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는 기원후8 0년경에,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유다인들이 같이 살던 지역에서 씌어졌다. 그는 예수께서 예언서에서 말하는 메시아임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축일은 9월 21일이다.
■ 루가
전해오는 이야기에서는 세번째 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훌륭한 의사인 루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바오로 사도와 함께 있었다. 루가는 마르코 복음을 사용하였고, 마태오에 대한 내용에서 언급된 어록 문헌도 사용하였다. 그는 이미 예루살렘의 멸망을 회상하고 있으며, 곧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보아 이 복음서의 집필 연대는 기원후 80년에서 90년 사이에 속한다. 루가는 1장1절부터 4절까지의 서두에서 시사하는 바와같이, 교양있는 이방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해 복음서를 썼다. 다른 복음에서 찾아볼 수 없는 훌륭한 이야기들을 우리가 알게된 것은 그의 덕분이다. 가령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나 탕자의 비유, 약은 청지기의 비유나 바리사이파 사람과 세리의 기도에 대한 비유 등이 그것이다.
이런 특별한 비유들은 신학상의 증명에 공헌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을 타락한 인간들과 사회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구세주로 나타내었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정복적인 방법으로, 예수를 통하여 나타난다. 축일은 10월 18일이다.
■ 요한
네 복음서 중에 마지막 복음은 요한이 집필했다. 그는 어부 제베대오의 아들이고 야고보와 형제이다. 이 복음은 1세기 말경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복음서가 수록한 이야기의 전달자이며 증인인 요한은「예수께서 사랑하신 젊은이」이다. 요한의 복음서는 마르코 마태오 루가의 세 공관복음과 근복적인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신 일에 관해서는, 제자를 한 명 택한 일만을 싣고 있고 대신 사마리아에 머무르신 이야기에 대한 긴 장이 삽입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말과 표징으로 예수님을 계시하기 위한 외면적 틀일 뿐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보내신 하느님의 아들이요, 인간들의 빛과 생명으로 나타나신다.
예수님에 대한 계시의 설명과,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세주로 보내지셨다는 그의 증언을 통해 요한의 복음서는 전시대에 걸쳐 신학에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는 이미 이 복음서를 영적인 복음, 신적인 복음이라고 일컬었다. 축일은 12월2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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