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바람이 불고 비가 뿌렸습니다. 라디오에서는『봄을 재촉하는 촉촉한 봄비가 귓전을 달콤하게 속삭인다』고 해설했지만 나는 전연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몸이 찌뿌드드하고 머리도 개운치 못하며 마음만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생각이 가닥을 잡지 못하고 마음은 웬지 뒤숭숭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따분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인줄 알면서도 자꾸만 짜증이 났습니다. 전화만해도 그렇습니다. 비바람이 쳐서 그런지 왜 엉터리 전화는 그리도 자꾸 오며, 왜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본당신부와 상의해야 할 혼사 일을 내게 문의하는지, 내게 어떤 성인의 축일이 언제인지, 어떤 성당의 전화번호는 몇번인지 별별 걸 다 물어왔습니다. 어쩌다 아는 사람한테서 온 전화는 무슨 부탁하는 전화뿐입니다.어떤 분은 독일에서 자기한테 손님이 오는데 며칠 여기서 묵을수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얄미운 생각이 드는 말은, 호텔은 비싸고 여관은 지저분해서 맘이 내키지 않으니 여기서 숙식하게 해주면 숙식비는 계산해 주겠다고 합니다.
나는 왜 이런 일에 짜증이 나고, 또 짜증스런 일은 한꺼번에 닥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신자라는 분은 「왜 꼭 주일미사를 주일에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바빠서 못해도 죄가 되는지?」물었습니다. 거기까진 나도 성의껏 대답은 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토요일 특전미사에 참석할 수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줄곧 짜증스럽던 마음이 여기서 터졌습니다. 「시내 어느 성당에서 몇시에 특전미사가 있느냐」는 겁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습니다. 「내가 어찌 시내 모든 성당의 특전미사시간을 다 알겠습니까? 그것은 직접 성당에 확인해서 알아보십시요」라고 대답한 내 어투는 친절했을리가 없습니다.「예, 알았습니다. 미안합니다」하면서 전화를 끊는 느낌이 나한테까지 기분 나쁘게 전달되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도 더욱 화도 나고 허탈했습니다.
요즘 잘 돼 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잠도 제대로 잘수 없었으며 자다가 자꾸 잠을 깨고 또 한번 깨고나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웠습니다. 특별한 고민이나 깊이 생각해야 할 무슨 확실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공연히 허전하고 맘속이 냉냉해져 갔습니다. 나는 나의 을씨년스럽게 만든것은 날씨 탓이려니 치부해 버렸습니다.그래서 이 비 바람이 그치고 창을 통해 따사한 봄별이 찾아와 주기를 단지 기다릴 뿐입니다.
나를 또 속상하게 하는것은 이 상황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수 없이 그냥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비를 그치게도 바람을 멈추게도 할수 없습니다.나를 속상하게 하지 않는것이 하나도 없는것 같습니다.그리고 내 스스로도「별 것 아닌것 가지고 속도 잘 상한다」생각은 하면서도 그게 맘대로 잘 안됩니다.사순절에 들어서면서 부터 답답한 일이 한가지 더 생겼다면, 사순절을 잘 보내려면 회개를 해야 한다는데 내겐 특별히 무슨 회개해야 할거리가 생각나지 않는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특별이 미워한 사람도 없고 원수진 사람도 없으며 누구 재산을 탐내거나 훔친 적도 없고 누구의 명예를 훼손시킨 적도 없습니다. 그저 나혼자 속상하고 화내다가 제풀에 풀리는 것 외에 특별히 회개해야 할 만큼 잘못한 일도 없고 생각나는 일도 없는데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교회는 왜 일률적으로 모두회개해야 한다는 강요를 하면서 멀쩡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지 불만스럽습니다.
회개가 필요한 사람은 뚜렷한 잘못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순절에 회개함으로 잘 보내기 위해서는 평소에 「회개가 필요할만한 죄를 지으며 살아야 할까보다」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회개의 시기에 회개할 일이 없는 것도 답답한 노릇입니다.
오늘 복음성서에는 『회개 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하리라』고 하는데 걱정입니다.또 전화 벨이 울립니다.친절하기로 결심하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원장 신부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안녕하십니까? 한가지 물어볼려 하는데…?』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그냥 신잔데요, 정관수술한 것도 죄가 됩니까?』 『아하! 그럼요, 그냥 신자도 정관수술은 죄가 됩니다』 『아, 제가 그냥 신자라고 한 것은 아는 신부님께 물어보기가 쑥스러워서 신부님께 전화드렸는데 신부님께서 누구나겨 묻는 순간 이름을 감추고 싶었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이름을 대도 신부님은 모르실것 같습니다. 나는 ○○본당 박○○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어떻게 합니까?』 『성사를 보셔아죠,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님은 절대 기절하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첫번째 손님도 아닐테고요. 오히려 잘 아는 신부님이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요』수화기를 놓는 손이 사뿐했습니다.
어느새 바람은 불지만 비는 그치고 정원에 꽉찬 햇빛이 눈부십니다. 창문을 활짝 힘차게 열었습니다. 참으로 봄비였나 봅니다. 매화가 꽃망울을 맺었고 산수유도 노오랗게 이미 피었습니다. 내가 내속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은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내맘을 열때에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회개는 자기에게로 숨어드는 마음을 이웃에게로 열어나가려는 계속적인 노력입니다. 마음이 내게로 향햤을때는 지옥같이 짜증스런 찌꺼기라 남지만, 짜증스런 느낌이 들때마다 이를 극복하고 이웃을 받아들이기로 결삼함으로 자신의 개방할때 이웃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겨 보여줄 것입니다.그 결과로 나는 하느님 나라의 평화와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게로 돌아오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부터 이웃에게로 향하게 하는 마음이「회심」이요 곧「회개」입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우리모두의 것이며 일회적이 아니고 매 순간 새롭게 결심해야 할것입니다. 짜증스런 일이 한꺼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닫고 있는 동안 매사가 짜증스럽게 느껴짐을 깨달았습니다.
성격 말씀대로 이러한 회개를 하지않고 항상 짜증스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의 멸망을 의한다고 하겠습니다.
나느 회개를 해도 한참 더 찐한 회개를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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