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주간을 지내는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수도원 근처에 있는 서울 성곽을 산책하다 잘 아는 수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나는 “수사님, 100세 인생 모르세요? 기본 100세는 사셔야지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수사님께서는
“에이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건 세상 사람들이나 원하는 말이고, 수도자들은 날마다 오늘만 살면 돼요, 오늘만. 내일 살 걱정을 하니까 혹시 내일 살 때 뭔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좀 더 가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소유한 것에 집착을 하고. 오늘만 살면, 우리는 내일을 위해 더 가질 필요도 없이, 진정 청빈을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예, 맞는 말이네요. 저는 언제 수사님처럼 비움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나도 젊은 때에는 수사님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하느님 때문에 모든 것을 비울 수 있는 묵상 체험을 한 것이 있었어요.”
“무슨 체험인데요?”
“아마도 50대 초반인가 그럴 거예요. 연중 피정 중인데 잠을 잔건지 깊은 침묵에 들어간 건지는 몰라도, 묵상 중에 어떤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게 되었어요. 어떤 장면이 떠오르고, 그리고 누군가 내 귀에다 장면을 설명하듯 속삭이는 거예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쉬셨지요. 그리고 그다음 날 동녘 해가 떠오르는데 하느님은 당신이 만드신 세상을 보셨지요. 새벽이슬을 머금은 초록 풀잎 위로 발그레한 태양이 뜨는 모습. 하느님은 그걸 보시며 얼마나 상큼해 하셨는지! 작고 귀여운 풀벌레의 꼼지락거림이 보이고, 새들도 날갯짓하며 지저귀고, 날고, 지저귀고, 또 날고. 푸르른 들판에 야생 동물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젖먹이 어린 것들은 꼼지락거리며 어미 품에 안겨 숨 쉬는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은 그 얼마나 싱그러움을 느끼시던지! 수정 같은 맑은 물속에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유유히 유영을 하고, 녹음 짙은 계곡 사이로 유리구슬처럼 맑은 냇물들이 강물로 이어져 흐르고, 그 강물은 저 넓은 바다로 흐르고, 또 흐르고. 가만, 졸졸졸 시냇물 소리, 그 소리를 가만히 귀 기울이시는 하느님은 또 얼마나 해맑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셨는지! 하늘 한 편에서는 뭉게구름 너머 긴 무지개 뜨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하얀 눈이 살포시, 살포시 내리는 세상. 그 하늘 가 곁에 새벽안개 사이로 촉촉이 비 내리고, 바람 한 줄기 흩날리는 그 아침의 한 장면을 유심히 보시는 하느님,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그런 다음 묵상 장면을 설명하는 그 목소리가 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애야, 나는 너를 더 많이 사랑한단다!’”
이후 공터에 앉아 세상을 둘러보는데,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 쉬신 후 여덟째 날을 맞이하던 아침 장면을 묵상으로 나누어주시던 수사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나에게, 우리에게 ‘사랑한단다’라고 하신 그 말씀, 그 느낌을 묵상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렀습니다.
‘에고, 내가 갱년기인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