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 for Take Off」(이륙준비완료) 펴낸 이연세 대령
군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2년간 쓴 104통 편지
미국 유학 간 아들에게 매주 장문의 편지
일상 나누고 교훈 전하는 등 ‘사랑 가득’
판매 수익금 전액, 어려운 이웃에 기부
이연세 대령은 “한 주 내내 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고민하고 기록해 2년 간 편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첫 장을 펼치면 사랑하는 아들의 창가에 앉아 그리움을 녹이며 저자가 읊조린 시 한 구절이 마음을 울린다.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문정희 시인의 ‘아들에게’)
이연세(요셉·56·육군 항공작전사령부) 대령이 펴낸 「Ready for Take Off」(이륙준비완료)(318쪽/1만5000원/한국청소년보호재단)는 34년의 군생활 중 31년을 헬기조종사로 복무한 저자가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에서 홀로 유학하는 아들 이종휘(안드레아·27)씨에게 2년간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보낸 104통의 편지글을 엮은 책이다.
■ 모든 아버지들을 대신해 쓴 편지
이 대령은 평생을 군에 바친 아버지로서 아들 얘기를 꺼내려는 순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쓰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들에게 잘못했던 일들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쓰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모든 아버지들의 소망을 제가 대신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2014년 8월 11일 오전 10시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 대령과 아내(신금선·마리아·55)의 눈물 젖은 시선에서 시작한다. 이 대령은 목표를 향해 어둡고 긴 터널을 뚫고 나온 아들을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아들이 자라온 27년의 세월, 직업 군인이기에 그 가운데 18년을 아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오래 전 온 가족을 놀이동산 주차장에 내려주고 애써 아들을 외면한 채 부대로 바로 복귀해야 했던 아빠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아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아들과 딸을 키우고 헌신적으로 군인 남편을 내조한 아내의 고달팠던 인생길도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언젠가 읽었던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떠올랐다.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보낸 편지글이다.
이 대령은 2014년 8월 17일부터 2016년 8월 7일까지 여덟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매주 아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한 주 내내 이번 주에는 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오감을 총동원해 방송, 신문, 사람, 자연 등 일상의 모든 사물에서 소재를 찾곤 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록하다 보면 놀랍게도 주말에는 한 통의 편지가 완성됐습니다. 늘 새로운 지혜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학업에 열중할 아들이 편하게 편지를 읽도록 미국 시각으로 주일인 월요일 오전이 되기를 기다려 편지를 보냈다.
■ 읽는 이마다 눈물 흘리는 이유는
「이륙준비완료」를 읽은 독자들은 진솔하고 섬세한 필체로 그려진 가족 간의 애틋한 사랑에 눈물이 났다고 말하곤 한다.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은 ‘나에게도 이런 편지를 보내주는 아버지가 있었다면 내 인생 행로가 달라졌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는 한편으로 ‘나는 왜 내 자녀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담은 편지 한 통 보내지 못했나’라며 후회한다. 젊은이들은 “아버지에게 매주 정성이 깃든 편지를 받은 저 아들은 행복하겠다”며 부러워한다.
이 대령은 「이륙준비완료」에서 항공기 조종사가 되기까지 굳건히 지킨 신념과 불굴의 의지, 영욕이 교차하던 군생활을 통해 얻은 삶의 교훈, 매년 3회의 성경 통독과 100권 이상의 독서로부터 얻은 자신만의 철학을 아낌없이 풀어낸다. 집안 할아버지가 도박에 빠져 가세가 기울었던 가정사나 초등학생 때 학교 유리창을 깨뜨려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돈을 탔던 이야기 등 감추고 싶은 면조차 솔직히 드러낸다. 미래세대인 아들에게 과거의 부끄러움을 정직과 성실이라는 긍정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대령이 「이륙준비완료」에서 아들에게 요청하는 ‘성공’은 세속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돈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라”고 말하고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돼 죽어간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인용해 아들이 자신의 노동에 혼을 불어넣을 것을 요청한다. “사람의 눈에 가려진 부분도 하느님은 본다는 정신으로 작품을 만들라”는 충고도 던진다.
아들에게 “화향백리인향만리(花香百里人香萬里, 꽃향기는 백 리를 가고 사람향기는 만 리를 간다)로 기억되는 사람이 돼 달라”고 당부하는 대목에서는 진한 부성애가 눈물겹게 다가온다.
지난해 2월 춘천 헬기추락사고 조사위원장으로 임명돼 사고 원인을 분석한 뒤 “늘 하느님을 믿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선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절실하게 깨달았다”는 상념을 아들에게 전하는 모습에서는 이 대령의 깊은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이연세 대령(왼쪽)이 2012년 9월 13일 논산훈련소 수료식 후 아들 이종휘씨와 함께했다. 오른쪽은 이 대령의 아내 신금선씨. 이연세 대령 제공
■ 우리 시대 또 한 권의 고전
「이륙준비완료」는 한 울타리 안에서 시간과 공간, 정서를 공유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에서 뿜어 나오는 생명력을 지닌다. 현대 가족윤리의 복원을 위한 필독서라 할 만하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영혼이 쉴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장소는 가정입니다. 제 책을 통해 가족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하면 가족 간에 사랑을 나눌 수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이른 새벽 일어나 성경 통독으로 하루를 열고 몇몇 복지시설에 나눔을 실천해 온 이 대령은 「이륙준비완료」 판매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문의 010-2620-5018 이연세(요셉) 대령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