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주부들
가족 건강에 대한 관심, ‘지구 돌보기’로 이어져
천 기저귀부터 친환경 세제까지
실생활 속 ‘행동’하는 이들 증가
개인 실천, 확장되도록 조직화 필요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다, 1년 전 남양주의 한적한 주택으로 이사 한 김미영(세레나·45)씨는 “아이의 건강 문제가 환경에 대한 관심의 첫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딸 정미가 5살이 될 때까지 아토피성 피부염과 거의 전쟁을 하다시피 했다. 안 다녀본 병원이 없다. 낮에는 견딜만했지만,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아이는 온 몸을 피가 나도록 긁어댔다. 엄마는 그 곁에서 꼬박 밤을 새야 했다.
결국 김씨는 도시를 떠났다. 먹거리도 바꿨다. 인근 농가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먹거리만 먹였다. 조금씩 밤새는 날수가 줄어들었다.
공장 매연, 자동차 배기가스 등 대기 오염, 빌딩의 실내 오염 물질, 인공 감미료, 방부제와 착색제 등 식품 첨가물, 농약과 살충제, 냉방기 프레온 가스 등은 아토피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오염 물질에서 멀어지고, 건강한 먹거리를 섭취함으로써 아이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김씨의 결론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김윤희(로사·37·서울 대방동본당)씨는 둘째 아이를 위해서는 천 기저귀를 사용한다.
“사실 많이 번거롭긴 해요. 아기 건강을 위해 불편함을 무릅쓰는 거죠. 수시로 버려지는 일회용 기저귀를 보면서 쓰레기를 줄이자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내친 김에 생리대와 세제도 직접 만들었다. 면 생리대는 사용감이 좋아 더 마음에 든다.
‘유용 미생물’(EM)을 이용한 발효액을 희석해 액체 세제와 함께 쓰면 세제 사용량도 줄일 수 있다. 베란다에 놔둔 채소 화분에 EM 희석액을 주면 벌레도 퇴치하고 채소도 잘 자란다.
조은연(마리아·75·수원 권선동본당) 할머니는 버리는 물건이 없다. 어지간하면 다 고쳐 쓴다. 할머니 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조차 볼 수 없다. 워낙 알뜰하게 식재료를 구입해 낭비가 없도록 하는데다가, 그나마 생기는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로 만들어 집 앞 텃밭에 뿌리기 때문이다.
지구는 누가 지킬까?
지구 환경과 생태계 보호는 모두가 함께 해야할 일이지만 여성, 특히 주부의 역할은 큰 몫을 차지한다.
아토피로 힘들어하는 아이의 건강을 돌보던 김미영씨에게 GMO, 유기농, 환경 호르몬, 공정무역, 기후 변화 등 굵직한 환경 관련 문제들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환경 관련 책도 뒤져보고,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했다. 김윤희씨 역시 화학 세제, 샴푸, 농약 등이 얼마나 지구 환경을 해치는지 잘 알게 됐다. 그래서 김씨는 인근 YWCA를 드나들며 환경 관련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사무국장은 “많은 여성들이 가정의 일상적인 문제들, 특히 자녀를 포함한 가족의 건강 문제에서부터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면서 “생활과 관련된 환경활동은 곧 사회적인 환경 이슈들과 지역사회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운영위원인 김양선(율리안나·서울 둔촌동본당)씨는 “개인적 실천이 공동체 활동으로 조직화되려면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분리수거, 에너지 절약 등 혼자서 관심을 갖고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주부들은 많이 늘었어요. 하지만 개인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조직화된 공동체적 노력은 아직 부족합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재돈 신부는 “환경 운동은 개인의 생활 실천 운동으로 시작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면서 “교회 환경운동에 있어서도 본당의 생태사도직 단체가 조직되고 전국적 차원의 조직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