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잘 지냈니?”
유학 시절 영성지도 신부님을 만나면 저에게 늘 건네는 인사말이었습니다. 그 말에는 제가 못 지낼 이유도 그럴 자격도 없다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답을 찾느라 늘 고심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못 지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우울하고 찡그린 얼굴로 사는 걸까요?
유학 중에 무척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울한 마음은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같은 기숙사에 사시던 안동교구 이영길 신부님께서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저는 멈칫했습니다. 내가 잘 지내는 건가? 신부님의 자상한 얼굴에 용기를 내어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신부님은 저의 말을 들으시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 어린 미소를 짓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다 그리로 거쳐 왔지요. 다 겪게 되는 거지요.”
“신부님도 어려운 때가 있으셨나요?”
“그럼요. 다 거치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신학생 시절, 신부님께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시던 중에 대장암 수술을 받고 방에 누워 계실 때 신부님을 찾아뵈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다 그리로 거쳐 왔지요.”
신부님의 그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요!
다 그리로 거치기 마련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과 어려움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겪은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그 길을 통해 지나갔고, 우리도 그리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우울하고 침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용기를 내어봅니다. 이렇게 삶에 새로운 빛이 비치고 새로운 길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평안하냐?”(마태 28,9)
당신을 배신하고 도망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관심사는 그들의 마음 상태였습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로 그들이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신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에 노크하시며 물으십니다.
“평안하냐?”
우리가 비록 힘들고 지쳐 있고, 침울한 마음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어봅시다. 그분에게 나의 마음을 보여드립시다. 마음 속 이야기를 드려봅시다.
어느새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분 마음의 온정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우리도 그분께 이 밤을 쉬어 가시기를 간절히 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빛이신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실 때 어두움과 두려움은 힘을 잃고 맙니다. 비록 인생에서 끊임없이 시련이 닥치고 나를 힘들게 할 원수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나의 영혼을 해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한 마음으로 얼굴에 다시 미소와 웃음을 되찾아 일상으로 돌아갑시다. 거기에는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런 가족과 이웃이 나를 기다립니다. 그들에게 환한 미소로 답합시다. “나 괜찮다”고, “아무 일 없다”고, “잘 지낸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웃음이 그들에게 전염되어 주위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