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격변의 시대다. 어제와 오늘이 생경하다고 할만큼 달라지고 있다. 이 격변속에 존재하는 교회는 그만큼 변화의 새로움에 대한 적응력이 요청되고 있다. 밖으로는 복음화 2천년대를 대비하고 안으로는 복음화 3세기를 살고있는 한국교회가 격변의 시대를 맞는 자세는 남다를수 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교회는 격변의 산물(?)이라할 시대적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신자증가율 감소와 냉담자의 꾸준한 증가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새로운 위기의 시대에 본보는 한국교회 전반을 심층분석, 진단하는 특별기획에 도전하고자 한다. 오늘 우리교회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자하는 이 기획은 「복음화의 산실」이라할 전국 14개 교구와 군종교구, 그리고 북한의 교회까지 취재대상에 포함시켜 한국교회 복음화의 현주소를 살피는 작업이다. 또한 이 기획은 지난 77년 창간 50주년을 맞은 본보가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서울대교구를 비롯, 전국 각 교구의 사목현장을 집중 진단한지 꼭 15년만에 시도하는 재진단이다. 당시의 기획제목은「복음화의 산실」. 본보는 당시의 기획 취지를 이어받고 지난 15년간 한국교회의 성장과 변화를 한눈에 대비해 볼 수 있도록 15년만의 재진단 제목을「신 복음화의 산실」로 설정했다. 아울러 15년전 복음화의 산실 기획에서 현장취재를 맡았던 기자들이 또다시 일선에서 취재를 맡아 진두지휘 함으로써 역사의 전통성을 잇도록 하는 한편 기획의 정확성과 풍부함을 함께 충족할 예정이다. 한국교회의 새로운 이정표를 수립하는데 작은 기여가 되고자 시도하는 이번 기획도 서울대교구를 필두로 전국 각 교구를 교구설정순으로 진단하게 된다. 격려와 더불어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애독자 여러분께 청하는 바이다.
■ 15년간 신자수 3배
91년말 현재 한국교회 신자수는 모두 2백92만3천3백86명으로 집계됐다. 한해 평균 증가치수인 17만명의 증가를 가산한다면 내년 한국교회는「3백만대 고지」에 올라서게 된다. 물론 한국 가톨릭 중앙협의회의 공식발표전이기 때문에 이는 잠정적인 수치임을 밝혀둔다. 본보가 복음화의 산실을 시작한 77년 3월, 당시의 한국가톨릭교회 신자수는 1백9만3천8백29명. 그러니까 만 15년만에 총신자수가 3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77년 신자수 역시 76년의 통계를 토대로 하고 있으므로 15년만에 꼭 1백82만9천5백57명이 늘어난 것이다.
이 단순한 통계수치가 바로 한국교회의 자화상이다. 지난 15년간 한국교회 신자수가 3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은 한국교회 복음화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불과 15, 6년 이라는 짧은 세월동안 한국교회는 신자수에 있어 2백만대 그리고 3백만대 진출이라는 획기적인 분수령을 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평면적인 분석과 단순비교적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최근 15년은 한국교회 2백년 역사에 있어 그 중심부에 있음을 알수가 있다. 다시말해 지난 15년간 한국교회는 수치상으로 1백80여년의 장구한 역사와 맞먹을 만큼의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 신자수 증가의 저변
그러나 우리는 성장곡선안에 숨겨져있는 저변, 그 진실을 읽어야만 한다. 절대수치의 증가를 곧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으로 해석할 수 없음을 인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의 몇가지로 집약해 볼수가 있다.
첫째, 신자수의 절대치는 증가하고 있지만 신자증가율에 있어서의 둔화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적극적인 전교에 힘입은 증가든 자연적인 증가에 의한 것이든 신자수의 절대치는 증가할수 밖에 없다. 신자수가 늘어날수록 늘어나는 신자폭이 큰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 신자수의 증가를 신자증가의 현상으로 진단할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70년대까지 상승곡선을 그려온 신자증가율이 80년대 들어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이 현상이 90년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둘째, 한국교회에 교세통계표라는 것이 선보인 50년대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냉담자와 거주불명자 수치가 신자증가율과 더불어 평행선을 그리며 신장(?) 되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급격한 변동에 따른 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은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고질병이지만 그 고질병의 그늘에서 한국교회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현실문제다. 드러나있는 문제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수십년간 누적되어온 우리교회의 현안문제-냉담자문제를 한국교회 전체시각에서 다루기 시작한 올 봄 주교총회는 고질병의 근원적 치유를 향한 획기적인 포석이라는 진단을 해볼수가 있다.
셋째, 신자수 증가가 오히려 무색한 사회적 병리 현상들의 증가추세가 또하나의 이유다. 지난 15년 동안을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기로 본다면 우리사회의 제반 윤리의식, 도덕을 역시 함께 성장하고 발전했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 아닌가. 지난 15년동안 한국사회의 도덕적 가치기준은 도대체 향방을 가늠 할 수 조차 없게 되었고 교회의 존재가치는 어디서부터 그 실체를 찾아야 하는지 우습게 되어 버렸다. 이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는 현상으로 치부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 외적 성장만 거듭
엄격한 의미에서 위의 세가지 지적은 물론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교회의 발전을 오직 교세신장에 국한시킬때 내릴수 있는 진단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한국교회의 전체구도를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92년도 전반부에서 본 오늘의 교회, 전체구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가.
흔히 70년대는「혼돈」과「진통」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혼돈속에서 진통을 거듭하면서 성장해온 것이 70년대였다면 80년대는 한마디로「격동의 시대」로 대변된다. 70년대의 경직된 상태를 그대로 물려받은 80년대의 한국사회가 격동속에 휘말릴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귀결. 80년대 후반부에 불어닥친 민주화의 열기는 그 격랑의 물결을 걷잡을 수 없도록 뒤흔들어 놓았고 교회는 70년대와 마찬가지로 그 물결의 중심부에 자리할 수 밖에 없었다.
교회가 격동의 중심부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70년대, 그리고 90년대의 한국교회의 위상은 명백히 드러난다. 굳이 전교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교회의 모습 그자체가 전교의 매력 포인트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진단은 1백80도 뒤집혀 질수도 있다. 그 매력 포인트가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 드러나고 있는 신자증가율의 둔화현상을 놓고 이 두가지의 요인을 함께 적용시킬수 밖에 없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마치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두개의 얼굴을 보는듯한 이 진당은 90년대 들어 또다른 양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회 스스로 자기 모습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고자하는 자성의 목소리는 지난 15년간 쉽게 볼 수 없었던 교회의 전혀 다른 얼굴이다.
최근 2천년대 복음화를 향해 교회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펼치고 있는 서울대교구의 사목연수회를 비롯 각교구별로 진행되고 있는 갖가지 시도들은 모두 외형적 발전이 내면의 성숙을 앞질렀다는 자성의 소리가 가져다준 소산물이다.
이른바 80년대의 3대행사를 치르면서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 마음껏 성장의 위세를 떨쳤지만 그것이 속빈 강정의 모습이라는 평가를 내리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성부족, 내적충실의 결여, 과대포장된 상품으로까지 비유되어온 이 평가는 교회발전의 새로운 국면을 예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하겠다.
■ 지역간 갈등의 심화
발전을 평면적 시각으로 한정시켜 본다면 70년대와 80년대가 이어진 지난15년간의 한국의 경제적인 측면에서 획기적인 성장기를 보냈다고 할수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은 곧 교회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늘어난 신자수에 걸맞게 한국교회는 지난 15년간 실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신자수의 증가폭은 따라잡지 못했지만 70년 당시 5백7개를 기록하던 전국의 본당 수가 지난해 9백여개에 육박한것은 교회성장의 또다른 상징으로 지적된다.
교구 살림살이 규모가 10배 이상 늘어난것은 일반적인 현상이고 수십배까지 늘어난 현상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전체적으로 엄청난 증가를 보인 교회살림살이였지만 이미 7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교구간의 격차는 전혀 좁히지 못했다. 이농현상, 인구의 도시집중화라는 시대적 유산을 고스란히 받아안은채 교회는 사회적 병리현상인 지역과 지역간의 격차, 대도시와 농어촌간의 벌어진 경제적 틈바구니를 메우지 못한다.
실예로 지난 88년, 서울과 수원을 제외한 전 교구에서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았던 기록은 인구의 대도시로의 이동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있다.
인구의 도시집중화는 신자의 도시집중화를 의미한다. 인구의 도시집중화에 따른 경제적 불균형은 교구와 교구간의 격차를 줄일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을 해온 것이다. 그동안 교회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노력이 격차의 폭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은 어쩐지 설득력이 약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엄청나게 벌어진 격차의 틈으로 지역간의 갈등이 심회되고 있다. 제사보단 잿밥에만 군침흘리는 우리 정치인들의 한심한 자태는 그 갈등을 부채질해왔다. 사회적 부조화와 불균형은 정치적인 방법으로 풀기는 어쩐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가 바로 그몫을 맡아야만한다. 이를 순리적으로 푸는데 교회만큼 좋은 역할을 할 임자가 없다.
■ 맺는말
15년전 복음화의 산실이 각 교구를 진단하면서 제시한 제목들은 당시의 교구상황을 보게하는 거울이랄 수 있다. 그 제목이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상당부분 그대로 적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많은것을 시사해준다. 교구의 특성과 고유함, 전통과 전망을 고루 살펴본 당시의 진단들을 한국교회의 정직한 얼굴 그 자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면 같은 제목으로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살펴야 한다면 그것은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15년이란 세월속에서 교회가 자신의 모습에서 좋은점은 살려내고 나쁜점은 가려내 버리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신 복음화의 산실」은 복음화의 산실이 시작된 77년 당시 교회언론과 전문가들의 눈에 비추어진 교회의 모습을 정직하게 살펴보면서 오늘의 교회를 대비시켜 보고자한다. 78년까지 장장 2년여에 걸쳐 이어진 복음화의 산실, 그 진단위에서 오늘의 교회를 정직하게 조명해볼 예정이다. 과거를 토대로 한 현실 진단이야말로 정확한 내일을 제시해줄 수 있는 가르침이 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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