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의 산악도로는 너무나 험하고 도로 사정이 나빠 언제나 차량의 고장을 예상해야 합니다. 일단 고장이 나면 속수무책 입니다. 안데스에는 정비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장난 차량이 생기면 뒤따르던 모든 차량의 운전기사들이 몰려들어 솜씨껏 정비를 도와줍니다. 그러는 동안 여행객들은 짐속에 꾸려온 과일과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차가 정비되기만을 기다립니다. 페루인들은 정말 낙천적입니다.
뽀마꼬차에서 수도인 리마까지 가려면 꼬박 31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합니다. 이것도 버스가 고장없이 잘 달릴 경우에 그렇습니다. 리마행 버스속에서 우리는 끼니도 잠도 모두 해결해야만 합니다. 차안에는 개, 닭, 오리 등 여러 가축들이 주인과 함께 타 암탉이 알을 낳기도 하고 철없는 오리들이 난장판을 만들기도 한답니다. 리마행 버스는 3명의 운전기사들이 교대로 번갈아 차를 몰고 간답니다. 어떤 고장을 지날때는 너무 더워서 차도, 사람도, 짐승들도 지쳐 모두가 주저앉고 맙니다. 또 안데스의 다른 능선을 지날떄면 너무 추워 벗어놓았던 옷가지들을 챙겨 입느라고 정신이 없답니다.
여행중 가장 불편하고 힘든 점은 간이 화장실과 여행객들을 위한 휴게소가 전혀 없다는 사실 입니다. 기나긴 시간동안의 여행에 있어 생리현상들의 감당할 수 없는 고통들은 여행객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리마에 거의 도착했을 때면 모두가 파김치가 돼버린답니다. 그래서 우리 선교사들은 여행시에 거의 침식을 거릅니다.
모든 것을 새로 마련하여 짓고, 배우고 익혀야하는 우리 선교사들에게는 여행도 잦습니다. 한번은 차차뽀야스교구 주교님께서 폐차 직전의 차를 선사하시어 저와 서신부님, 청년교우 한분 등 셋이서 리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고장과 수리를 수없이 되풀이 하면서 한 여행이었습니다. 교우가 운전을 할때면 졸수 있었지만 서신부님께서 운전대를 잡으면 졸음이 싹 도망가 버립니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닭소리와 소울음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주위는 희미하게 동이 트고 있었으며 우리 차는 어느 마을과 조금 떨어진 한적한 도로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과 함께온 교우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이게 어찌된 일인가하고 창밖을 둘러보니 아스팔트 위에서 두분이 세상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기나긴 리마행 여행을 두분이 당번제로 운전을 해왔건만 『졸음을 도저히 이기지 못해 차안에선 감히 수녀님이 주무시고 계셔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 자게 되었다』고 서신부님께서 겸연쩍게 말씀하시지 않는가.
정말 두려울 정도로 멀고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희망들이 이러한 두려움을 모두 앗아갔습니다. 김안셀모 신부님도 만날 수 있고, 성사도 받을 수 있고, 사고싶은 물건도 구입할 수 있고, 따뜻한 물에 몸을 씻을수도 있고, 밝은 전기불 밑에서 책도 보고 TV도 볼 수 있으니까요. 정말 신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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