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공성사때 고백실에 앉아있는데,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느낌이 들때가 있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때가 언제였던지는 영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오래전이긴 해도 성사 줄때는 아니었고, 그러면 언제 어느땐가…아무리 생각해도, 새 고백자는 자꾸 들어오고 생각은 나지 않았습니다. 성사를 주면서도 틈틈이 분심을 하며 그때를 기억속에서 찾으려 했지만 헛일이었습니다.
사방은 벽으로 둘러 싸여있어 답답하고 새 고백자는 끝도 없이 들어오고 나는 갇혀서 꼼짝도 못하고 이런 경험이 성사줄때 말고 언제더라? 계속 여기까지 밖에는 생각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내가 답답한 것은 꼼짝못하고 앉아서 성사주는것이 아니라 생각나지 않는 과거 어떤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며칠전 머리를 식히느라 창문을 열고 앞을 보니 도로에 차들이 꽉차서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저 차들이 마치 판공성사때 고백자 행렬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갑자기 그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성사 주다 생각은 났지만 알아내지 못했던 사건은 바로 옛날에 (적어도 15년전)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 났을 때였습니다. 그 날도 운전병을 데리고 장거리를 가는 도중에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길 옆으로 지프차를 밀어 세워 놓고는 지나가는 차들에게 구원을 요청해봐도 곱지 않은 눈으로 흘깃 보기만 했지 그냥 다 지나 갔습니다. 미리옆 눈으로 봤는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차들도 있었습니다.
약이 오른 나는 지나가는 차들에게 돌멩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차 뒤에다 대고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속도위반이니까 가다가 교통순경한테 잡혀라! 시간도 뺏기고 벌금도 내고, 아 고소하다. 그봐 나를 도와 줬으면 괞찮았지. 너는 쳐다 보지도 않고 그냥 가냐? 가다가 빵꾸나 나버려라. 그리고 공구가 없어서 나같은 고생을 해봐라. 너는 화물차 운전수구나! 평생 남의 화물차나 운전해서 먹고 살아라!
한참 동안 직결 재판관 노릇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기분은 좀 풀렸고 새로운 처벌을 생각 하느라 약간 재미도 있었지만 무심한 차들은 끝없이 지나가고 나도 지치고 시들해 졌습니다. 내 발등의 불이 더욱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경찰 순찰차가 와서 내 운전병을 시내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싣고 가버렸습니다. 나는 그냥 혼자 차 안에 앉아서 운전병이 자동차 부속품을 사 올때까지 막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관 노릇을 계속해봤지만 그 따분함이란 말 할 수 없었는데 바로 그 때의 느낌이 고백실에서의 그 날 느낀 그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성경에서는, 간음하다 들킨 한 여인을 사람들이 예수께 데려와서 모세의 법대로 돌로 쳐 죽일까 하고 물었습니다.
모세법에는 : 『이웃집 아내와 간통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레위 20, 10) 또『어떤 자가 남의 아내와 한 자리에 들었다가 붙잡혔을 경우에는 같이 자던 그 남자와 여자를 함께 죽여야 한다. 약혼한 남자가 있는 쳐녀를 다른 사람의 성읍 안에서 만나 같이 잤을 경우에는 둘 다 성읍 성문 있는 데로 끌어 내다가 돌로 쳐 죽여야 한다』(신명 22, 22~24)고 되어있습니다. 이 법의 문맥을 보면 간통을 저지른 남자를 중심으로 한 처벌 규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남자는 어디가고 여자만 붙들려 와서 곤욕을 치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남자 혼자 재빨리 도망을 쳤든지 동네 사람들이 남자는 봐 줘서 풀어 줬든지 둘중에 하나일것입니다. 법대로 한다면 남자도 잡아와서 함께 처형을 하든지 아니면 여자도 풀어줬어야 했습니다. 여자만 데리고 온 걸 보면「남자를 풀어준것」이 거의 확실할성 싶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자는 풀어 줬을까…
아마도 여자를 붙들어 온 자들도 경중의 차이가 있을망정 비슷한 전과가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혹시 그중에는 도망간 남자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빚(?)을 갚은 셈이겠지요. 아무튼 성경에서도 예수님이『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고 말하셨지만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한사람씩 그래서 모두 그 자리를 피해 버렸습니다. 결국 모두가 죄인이란 말입니다.
사실 고백소에 앉아 있어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세상사람들이 나를 포함해서 꼭같은 죄를 짓고 사는지 감탄스럽습니다. 어떤 때에는 나를 대신해서 고백하는 것같아 섬찟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같은 죄를 짓고 사는 줄 아는데 반드시 들어가야할 죄목이 빠진다 싶을 때도 있고 분명히 뭔가를 꼬불친다는 느낌이 있을때도 있습니다 만, 그래도 말 않고 넘어 가곤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만 그 죄를 짓고 사는지 알고 고백하기를 주저하고 부끄러워 하지만, 오늘 성경에서도 들려주다시피 사실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꼭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왕 고백소에 들어왔으니까 감추지말고 속시원히 털어놓고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날도 남자보다 여자 고백자가 많은 이유도 짐작이 갑니다. 남자들은 다 도망가고 또는 이런 저런 핑계로 빠져 나간 모양입니다. 사방은 막히고 비좁은 고백소에서 이렇게 매번 같은 소리를 듣자니, 끝도 없이 서있는 고백자의 행렬은 막힌 도로에서 꼼짝도 않고 서 있는 자동차 행렬같아 답답합니다만 말문이 막혀버린 고백자를 만나는 것은 더욱 견디기 어렵습니다.
기발한 보속을 생각해 가며 직결 재판관 노릇하는것도 처음 얼마간이지 즉시 시들해지고 부속품 사러간 운전수 기다리듯, 차 마시고 쉬었다 계속하라는 전갈 오기만 기다리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지나가던 차에다 대고 욕한것이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그 후에 나도 고장난 차를 흘깃보며 그냥 지나친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 시간부로 내가 한 그 모든 욕들을 너무 늦었지만 다 취소합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돌을 던질 자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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