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베개를 안고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당연히 이상하게 쳐다 볼 수밖에! 그래도 대중교통 덕택에 원장님 진료 시간을 맞춰 병원에 도착했답니다. 그런데 커다란 베개를 안고 들어오는 신부님을 본 순간 원장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아이고, 이럴 줄 몰랐네. 아이고, 신부님, 이리도 큰 베개 가지고 오시느라 힘드셨죠?”
“아뇨, 부끄럽기는 했지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원장님이 큰 소리로 웃으시더랍니다. 그리고 베개를 가만히 바라보고 쿠션도 눌러봤습니다.
“신부님, 이 베개 언제부터 쓰셨어요?”
“아, 지난번에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저녁에 후배 신부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칫! 또 하려다가, 멈칫.
“후배 신부님이 선물하신 거예요?”
“예, 건강에 도움이 되라고 사 준 거예요.” “그런데 신부님, 이 베개는 신부님께서 이 다음에… 음, 건강에 좋으실 때 다시 쓰시고요. 지금은 신부님의 건강이 안 좋으시기에…. 목 디스크가 있잖아요. 그래서 이 베개를 쓰시면 안 됩니다.”
‘헐, 이런 일이…. 어찌 이런 일이.’
그 신부님의 눈앞에는 후배 신부님의 선하고 착한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고 합니다.
“건강에 좋다고 특별히 신경 써서 선물로 준 건데. 그런데 그 베개가…. 그 베개가….’ 슬픔과 상념에 빠진 그 신부님에게 원장님은 계속해서 말했답니다.
“신부님, 이 베개는 쿠션이 너무 좋아서 건강한 사람이 잠을 잘 때는 목 주변을 잘 잡아주는 기능을 하고, 안정감 있게 고정시켜 주는 데는 정말 좋은 베개지만…. 우리가 잠을 잘 때에 이리, 저리 몸을 뒤척거리잖아요. 그런데 신부님처럼 목 디스크가 있는 환자분들이 주무실 때 옆으로 돌아 눕거나 할 때엔 이 베개의 강력한 쿠션이 신부님의 목을 계속 눌러주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신부님은 지금은 이 베개를 쓰시면 절대 안 됩니다.”
그 신부님은 사제관으로 돌아오는데, 기운이 빠지더랍니다. 3개월을 그렇게 치료를 잘 받았는데, 후배 신부님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그 베개 때문에 오히려 치료가 더디, 더디게 되다니! 터덜터덜 걷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풀이 죽은 채 또다시 대중교통을 타고 사제관으로 돌아왔답니다. 그리고 오는 내내, ‘사랑이 참 아프다’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냥 사랑 그 자체로 좋은 사랑이 있지만, 때로는….
‘에고, 사랑도 건강하게 사랑해야지! 누구 탓할 수도 없고.’
그 날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그 후배 신부님은 선배 신부님이 잘 계시나 싶어 사제관에 왔고, 사제관 마당에서 서로가 만났답니다. 그리고 후배 신부님은 영문은 모르지만, 그래도 자신이 선물한 베개를 가슴에 안고 돌아다니시는 선배 신부님을 보고, 너무나 감동했답니다.
그 신부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지만, 분별력과 식별력 있는 사랑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아픈 사랑을 찐-하게 몇 번을 하다보면, 건강한 사랑이 뭔지도 진정, 눈을 뜰 수 있지 않을까도 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