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죽음ㆍ부활의 빠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교회전례는 성삼일로 그 절정에 달한다. 본지는 성삼일의 고유한 전례적 의미를 요일별로 소개하여 신자들의 능동적인 전례참여를 유도하고자 한다.
■ 성삼일 전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전례는 성목요일 저녁부터 부활주일 저녁까지 3일간 계속된다.
이미 성 아오스딩(+430년)도『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히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3일』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성삼일은 교회력의 최고봉을 이룬다.
고대의 증언들에 의하면 초대 그리스도교신자들은 단지 주일의 전례, 즉 그 주간의 첫날인 부활주일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곧 부활축일을 특별히 거행하게 되었고 4세기까지 연중 유일한 축일이었다. 그후 성탄축일이 생겨남과 동시에 이 부활축일을 더 세부적으로 나누게 되었다. 즉 최후의 만찬, 수난과 죽음, 무덤에 묻히심과 예수의 부활을 3일로 나누었다는데 제2차 바티깐공의회 이후 쇄신된 전례에서 이 성삼일이 돋보이게 되었다.
■ 성 목요일
널리 알려진 전통으로 이날 명칭의 유래는「슬퍼하며 울다」라는 뜻에서 온것인데 이는 이날 밤에 주님의 수난이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5세기 이후부터 성목요일에 주교는 자기 사제들과 함께 소위 성유축성(크리삼) 미사를 봉헌하고 세례ㆍ견진ㆍ신품ㆍ병자성사와 제대축성에 필요한 성유를 축성하게 되어 있다.
이 합동미사에서 주교와 사제들간의 일치가 특별히 표현되었다. 어떤 교구에서는 가능한 많은 사제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목요일 전야 즉 수요일 저녁에 거행 하기도 한다.
성목요일 낮동안에는 아무런 미사도 거행하지 않는다. 저녁때에 비로소 신자들이 모여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기리는 성체성사를 거행하게 된다.
발을 씻어 주는 일의 성경말씀(요한13, 1~15)은 주님이 우리에게 해 주시는 봉사와 우리가 서로 서로에게 해 주어야 하는 봉사를 기억하게 해 준다.
이 복음을 깊이 묵상하는 뜻으로 사제는 신자대표들에게 발 씻는 예식을 할수 있다. 이런 관습은 수도원생활에서 비롯되었으며 롤레도공의회 이후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12세기 부터 전례에 도입하게 되었다.
미사후 주님의 성체는 아주 조촐한 행렬을 하며 성당옆 회당으로 옮겨져 보존되었다가 성금요일 신자들에게 영성체를 시켜 주게 된다. 또 주님이 올리바 동산에서 기도하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밤새 조용히 성체조배를 하게 된다.
■ 성 금요일
성 금요일에는 교회가 미사를 봉헌하지 않는다. 신자들은(가능하면 주님이 죽으신 15시경에) 성당에 모여 십자가의 전례에 참여한다. 이 전례는 3부분으로 즉 말씀의 전례, 십자가 경배, 그리고 영성체로 나뉘어져 있다.
말씀의 전례는 이사야예언서, 헤브레아서간 그리고 요한복음을 낭독하며 주님의 수난을 기억한다.
첫째 독서는 수난당하는 하느님의 종이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면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이다. 그분은 우리의 죄와 온세상의 잘못을 짊어졌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다음의 기도에서 하느님께 간구한다. 이 수난과 죽음이 온 세상을 위해 결심을 맺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한 하느님의 온 백성을 위해서 신자들의 일치와 유태인, 타종교인들,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 정치 지도자들과 곤궁에 처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십자가 경배는 4세기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것이다. 정오경에 골고타언덕의 십자가성당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유물을 경배하도록 세워 놓는다. 그리고 성경을 낭독하고 시편을 노래했다.
8세기에 이 경배가 서방라틴교회에도 들어 오게 되었다.
십자가 처형은 옛날시대에서도 가장 혹독한 처형방법이었다. 이 처형은 널리 전파되어 있었고 아마도 이런 잔인한 처형으로 정치적, 군사적 반란을 예방하기 위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원시적인 복수심이나 각 독재자의 도착된 잔인성에도 맞아 떨어졌고 센세이션을 좋아하는 군중의 구경거리가 될수 있었다.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은 특별히 인간사회에서 추방된 것이다. 옷을 벗기고, 괴롭히면서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 사람들은 그 죄수에게 무덤도 주지 않았으며 결국 인간으로서 가장 비참한 운명에 빠지게 한 것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이 십자가 이야기를 들었을때 인간의 완전한 창피라고 여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골고타언덕에서 일어난 이 처형이후 20년이 자나서 바오로는 『십자가는 유태인들에게는 수치요 외교인들에게는 바보짓』이라고 썼다. 이 때문에 신자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밖으로 보여 주는데 다소 기간이 흘렀던 것이었다. 그래서 4세기 말경에서야 십자가 모습을 담은 여러가지 예술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금요일에는 이제 옛날시대의 창피스런 십자가가 세워지고 신자들의 십자가 경배가 중심이 되어『이 나무에 세상구원이 달려 있다』고 노래한다.
십자가를 정중히 모시고 나오며 3번씩 장엄하게 높여 올리고 무릎을 꿇고 조용히 경배한다. 신자들은 그들의 왕을, 죽음을 이긴 승리자,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세상에 생명을 가져다 준 그리스도를 흠숭한다.
영성체를 위해 곧 제대보가 씌워지고 성체가 모셔진다. 식전기도로 신자들은 주의기도를 바친다. 그리스도 죽으신 날 그분의 죽음으로 얻은 생명을 주는 양식에 참여 하기 위해 그들은 성체를 영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와 파견강복으로 예식은 끝이 난다.
■ 성 토요일
성토요일에는 제대는 비어 있고 아무 예식도 거행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죽음의 나라로 내려 가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그분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며 지낸다.
■ 부활전야
부활전야의 전례는 밤중에 이루어 진다. 성경비유 말씀의 종들(루가12, 35 이하)처럼 신자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주님께서 오셔서 당신의 식탁에 초대할 때 까지 기다리고 있다.
빛의 예식, 말씀의 전례, 세례식 그리고 미사거행이 이 거룩한 밤의 4부로 나뉘어진 예식이다.
신자들은 어둠속에서 침묵하며 모여 있다. 부활의 불을 피워 부활초에 불을 붙인 후 불타는 촛불뒤를 따라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 온다. 그리고 그 부활 촛불로 신자들의 초에 불을 당긴다.
부제나 사제가「용약하라」즉 부활전야의 찬미노래를 부른다. 이미 1500년 이후부터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사업, 간택된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심부터 주님의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하느님의 업적에 대해 대 찬미가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음 말씀의 전례에서는 구약에서 7개의 독서를 읽게 되는데 홍해를 건너 온 구원된 백성에 대해 들려 준다. 구약독서 다음에는 장엄하게 글로리아(대영광송)를 부른다.
로마서 독서는 세례로 얻고 그다음에는 부활의 대알렐루야를 부르게 된다.
복음성경 낭독은 부활소식을 전해 주고(마태오28, 1~10) 곧 세례식이 거행된다. 원래는 부활전야때만 세례를 베풀었기에 이 세례를 기억하기 위해 성수를 축성하게 된다.
신자들은 그들의 세례를 생각하고 성인들의 간구를 빈 후 세례신앙고백을 새롭게 하게 된다. 사제는 신자들에게 방금 축성한 성수를 뿌려 주고 세례노래를 부르게 된다.
세례를 기억하며 신자들은 성수를 각자 집으로 갖고 가며 성수로 십자성호를 그을때마다 그들의 세례를 상기하게 된다.
부활전야의 최고봉은 성체성사거행이다. 신자들은 제대주위에 모여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선포하고 그분이 다시 오실때까지 찬양한다.
영성체때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분, 부활하신 그분이 자기 신자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며 부활의 승리에 함께 참여하도록 해 주신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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