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중심으로 한 사도단은 전교에 나서서 사탄을 이겼고 하느님 나라를 체험으로 알게되였다. 이제 그들은 인간의 행복이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데 있음을 알았고 그들 눈앞에 스승예수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전개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였다.
이제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 갈 수 있겠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당면문제로 남아있다. 이 질문은 제범 자신있는 생활을 해온 어떤 부자청년이 예수께 던진 질문이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수 있겠습니까?』(루가18, 18 : 마르10,17 : 마태19,16).
여기서는 율법학자중 한 사람이 이 질문을 예수께 던졌다. 마태오에 따르면 그 율법학자는 바리사이파 사람중의 한 사람이었다. 루가와 마태오는 율법학자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질문을 한것으로 되어 있어 평소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예수와의 적대관계를 돋보이려고 한것 같으나 여기서「시험해 보라」라는 단어는 예수가 40일 재계를 지킬 때에 악마가 시험했던 불신앙의 태도와 다르다.
여기서는 공적으로 인정받는 종교지도자 율법학자가 비공식적인 민중의 스승에게 자기네들이 품고있던 문제를 제시하는 이른바 학자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학자는 군중과 토론하며 (그 군중은 바리사파의 반대파인 사두가 이파였다고 마태오는 지적하고 있다) 논쟁을 훌륭한 대답으로 이끌고 있는데 탄복하고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선생님」이라고 존칭을 써서 붙혔다.
유대아인들은 생겨날 때부터 종교적인 민족이었고 그들에게는 하느님 공경과 동족사랑이라는 모세의 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계명은 인간생활의 외부적인 제약으로 발달하여 학자들은 그 외부적 제약을 세분화하는데 골똘히 힘쓰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생활을 외부적으로 종교화하여 지켜야할계명 248조항, 금기의 조항361조항, 모두 합해서 631조항으로 세분화하였다. 그러나 이 잡다하고 많은 계명을 다 지키는 것도 번거롭거니와 613조항의 법규를 지키느라고 세월을 다보내게 된다. 그러니 생활하는데 중요하고 본질적인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수 밖에 없다.
율법학자는 이러한 종교 생활의 고민을 예수님께 털어 놓은 것이라고 볼수있다. 『모든 계명중에 어느 계명이 재일가는 계명입니까?』라고 . 사람이 번거로움속에 묻혀있다 보면 바로 내 곁에 있는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수가 있다. 특히 외적인 형식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긴요한 알맹이를 빠뜨리게 된다.
모든 유대아인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하느님의 말씀을 낭송하면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 글들의 말로 「쉐마 이스라엘 」이라는 야훼의 말씀을 두번 낭송해야 했다. 그 듣는 내용은 『우리 하느님은 한분뿐인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활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이 계명의 말씀은 예나 제나 한결같이 참된 구원의 진리이다. 첫째 계명으로 제시된 것은 구약성서 신명기 말씀이며(6,4~5)둘째 계명의 말씀은 레위기의 말씀이다(9,18). 그들이 이 중요한 계명을 몰랐던 것이 아니고 형식주의와 종교적 권위주의에 빠졌고 말할수 있으며 하느님 사랑으로 살고 있다고 믿을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이란 이름으로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울수도 있다. 그러나 이눗을 사랑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보여야 하는 실적이 남아 있다. 유대아인들은 번제물을 바치고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하느님 사랑을 대신했다. 그리고 이웃사랑은 다름아닌 동족사랑으로 국한시켰다. 예수의 가르치심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던 두 계명을 하나로 묶어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이웃은 누구나가 다 내 이웃이다. 내 혈육을 사랑한다면 그들보다 더 나을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도교회의 공동체는 이제 유대아인들의 편협된 사랑개념에서 벗어나 반항을 향하여 하느님의 복음을 권하고 있는 상황을 이대목에서 보여준다.
누가 이웃이냐 하는 문제는 루가복음서 10장30절이하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가르치고 있다. (다음 대목 참조). 그리고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느냐는 것은 예수의 황금률인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는 남에게 해주어라』. 이사랑의 실천은 에사롭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네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다시말하면 네 모든 정성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예님은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게 사느냐 하는것에 대한 해답은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