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얽힌 또다른 이야기를 한가지 하겠습니다.
어느날 저녁미사후에 갑자기 의견이 모아져 신부님과 농장에서 기를 병아리를 사기위해 길을 떠났답니다. 여기서는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 때문에 피곤함을 쉽게 느끼기에 주로 밤에 여행을 한답니다.
신부님과 운전을 돕는 청년, 그리고 우리 인보성체수녀회 선교수녀 둘. 기도와 성가로 시작된 기분좋은 여행의 순간이었습니다. 차 불빛에 비쳐지는 계곡의 밤경치는 우리를 경탄케했습니다. 야생화의 아름다움, 야생조의 놀란 날개짓, 계곡의 거센 물 흐름 등을 통해 하느님의 위대한 섭리에 찬미,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시간 남짓 달렸을까! 갑자기 길 가운데에 파진 깊은 웅덩이에 차가 빠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차는 빠져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않았고 물이 스며드는 차안에 갇힌채 밤을 지새워야만 했고 냉기와 습기가 밤새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다음날 새벽이 지나서야 지나가던 트럭이 우리를 발견하고 웅덩이 밖으로 끌어내 주었습니다. 하지만 고장난 차는 신부님과 청년이 계속 내려치는 빗발을 마다않고 삼일 밤낮을 고생과 심혈을 다해 수리해보았지만 한치의 반응도 없이 그 명을 다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수녀들도 그 사흘동안을 준비해둔 등산용도구로 밥을 지어 나르고 공구를 집어주는 등 함께 애써 보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첫 출발때와는 정반대의 기분으로 차도 사람도 트럭에 실려 되돌아오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계획은 인간이 세우지만 결과는 하느님께서 만드신다』는 성서말씀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답니다.
이런일 저런일 다른나라의 것들을 배우고 이해하는데는 간혹 위험을 당할때도 있답니다. 어느날 리마에서 우리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베드로루이스에 도착한 것이 새벽 3시였습니다. 이 마을은 교통의 요지로 멕시코 수녀님들이 스페인 신부님들을 도와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마을입니다. 그리고 이 마을은 전기도 있어 오후 1시경에 불이 들어와 새벽2시경에 단전이 됩니다. 내가 막 도착했을 땐 마을 전체가 캄캄했고 다만 지나가는 차량들의 여행객들에게 쥬스나 과일을 파는 작은 구멍가게만이 등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여행객들은 차를 갈아타거나 오지 마을로 들어가는 트럭을 기다린답니다.
얼마를 기다리니 뽀마꼬차 방향의 트럭이 와서 내가 타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항상트럭 앞에는 운전기사의 가족이나 조수들이 타며 다른 사람들을 태우지 않는 것이 관례라 어둠중에서도 트럭 짐칸에 급히 서둘러 올라가 더듬더듬 조심스레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보니 어떤 남자한분이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소리를 지르니 당황한 나에게 『놀라지 마십시오. 수녀님! 한 페루 남자를 믿어볼 좋은 기회가 될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야!이거 내가 실수를 했구나, 늦었지만 베드로루이스의 그 수녀원에 들어갈걸 어쩌나』하고 속마음을 태웠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저의 경솔한 탓 입니다. 최악의 경우에 뛰어내릴터니 도와주십시요』하고 기도로 떨리 마음을 달래며 밤추위를 감당하노라 애쓰다보니 조금씩 날이 밝아왔습니다.
얼마나 왔나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저만치에서 방 신부님께서 차를 몰고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방신부님은 트럭을 세우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게 『빨리 내려오라』고 손짓하시는데 나는 왈칵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밤여행을 통해 나는 하느님이 함께 하시고 제복을 입고 생활하여 언제나 별 두려움과 걱정없이 행동해온 나의 생활방식을 재정비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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