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잔디 위에 누워 뿌연 하늘을 멀건히 올려다 보며 상념에 젖은 한가한 한 때였습니다. 엷은 봄 햇살이 그래도 따사했으며 그냥 누워 꽃과 풀과 그리고 흙의 비빔 내음을 맡으며 음악을 듣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비발디의 사계」가 벌써 세 바퀴째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대답은 없이 한가지 질문만 그냥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진짜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까?』 약간 지루한 느낌과 함께 귀에 꽂힌 것을 뽑으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내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몸을 뒹굴어 보고 기지개를 켜면 발 끝에서부터 전달 되는 힘이 느껴지고 부듯한 행복과 평화가 전신을 감싸듯 했습니다.
이 행복한 삶의 확인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다시 뉘인 몸을 뒹굴어 보았습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삶의 확인」은 대단히 귀중한 체험이란 생각을 하며 나의 두 손을 유심히 들여다 봤습니다. 비록 검고 거칠지만 내겐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수족입니다. 만일 내가 죽었다고 가정한다면 이 손이 수 시간내에 싸늘하게 식고 딱딱하게 굳을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내에 썩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이 손도 내가 필요로 하는대로 멀쩡하게 움직이고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며 만지고 주무르고 촉감을 전달해 줍니다. 두뇌가 명령만 내리면 작은 꽃잎을 따서 입에 물려주기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내기도 합니다. 바른 손과 왼손은 서로 손톱도 깎아주고 비누칠 해서 깨끗이 씻어 주기도 합니다. 또 따로 할 일도 있어서 글을 쓸 때는 왼손은 종이를 바쳐주고 바른 손은 연필로 글씨를 씁니다. 이 모두가 살아있다는 표시 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거나 드문 일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세례성사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사람으로 살아 갑니다. 그는 이제 새로운 머리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지체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고 도와주며 때로는 서로 다른 봉사를 하면서도 불만 없이 순종합니다. 이 작은 일들이 곧 지체로서 살아 있다는 표시입니다.
임종하는 사람을 옆에서 끝까지 지켜 본 적이 있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답답하고 지루한 순간들을 넘기면서 호흡이 가빠지다가 느려지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수 시간을 줄다리기한 후 서너번 딸꾹질 같은 호흡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저렇게 죽기가 힘들어서야 나는 나중에 어떻게 죽을까…나는 저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는 없을까…」 그렇게 한번 넘어선 죽음의 과정을 어떻게 되짚어와서 다시 살아난단 말인가…더구나 풍화작용으로 소멸되어버린 육체가 다시 재생된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고 그냥 하는 소리로만 들립니다.
세례성사를 받으며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에 별로 신경쓰는 사람이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세례성사를 꼭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받으려는 사람도 몇 안되는 것 갖습니다. 따라서 세례성사로 새 사람이 된다는 것도 전연 실감나지 않는 듯 합니다. 교리시간에 그렇게 가르치니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확인이 없는 한 나도 죽을 것이란 것은 다만 머리속의 생각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죽음이 나와는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이므로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별 의미없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 질 것입니다.
정말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얼마든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것이 은총입니다. 축복입니다. 귀한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무관심은 생명에 대해서도 그 귀함을 의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귀한 것임을 의식하지 못하면 영원한 삶에 대한 염원도 희망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성사로 다시 태어나는 「새 사람」에 대한 의식도 실감나지 않을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새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불러 일으키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새로운 열망을 가져다 주기에 이 확인이 곧 생명의 작은 탄생이요 부활의 작은 체험이 됩니다.
해마다 부활절에는 많은 새 영세자들이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부활 성야 밤예절에 모든 신자들은 이미 받은 세례의 갱신식을 합니다. 그리스도이신 촛불을 손에 들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 분의 지체가 되는 우리가 모두 부활하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며 오늘의 기쁨입니다. 나아가 부활축일에는 특별히 우리의 삶에 대한 확인과 더불어 이 생명이 영원한 생명의 보증이기에 또한 우리가 기뻐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생활에서도 이러한 삶의 현장을 순간 순간 확인합니다.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또한 고통스러울 때에도 그것들이 곧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증거 임을 깨닫게 된다면 이 세상 삶이 결코 고달프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활축일은 지금 살아있음을 깨우쳐줌으로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고 결국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축일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신비 속에서 살고자 할진대 매일 자신의 생명 즉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생명의 귀한 가치와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도 아울러 갖게 될 것입니다. 나는 머언 훗날, 나의 부활에 부쳐 한가지 소박하지만 소중한 상상을 해 봅니다. 묘지에서 흙내음 풀내음을 함께 맡으며 기지개를 켤 때 『아! 내가 다시 살아 났구나』하는 확인과 더불어 평화와 행복에 한껏 젖어 있을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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