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유명한 이야기. 오늘의 이 대목은 전 대목 177<첫째가는 계명>과 대목 178<착한 사마리아인>과 연결되어 영성신학을 이루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첫째 가는 계명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인데 그 사랑실천은 이웃사랑 즉 착한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그 이웃사랑이 진실이라 하더라고 손님대접과 같은 목숨에 관한 일이 아닌 것은 절도를 지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아마도 72인 제자들)을 데리고 여행하시다가 어떤 마을에 들렸다. 그 여행길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를 만난 피해자가 가던 길을 거슬러 갔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피해자는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이었고 예수님의 여행은 복음서의 목표에 따라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을은 마르타가 살고 있는 마을이며.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마르타는 연장자로서 여동생 마리아와 남동생 라자로와 함께 베타니아에 살고 있었다 (요한11. 1~2).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오리밖에 안되는 (요한11. 18) 곳으로 이 동네를 유다아의 베타니아라 부르고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강 건너편의 또 하나의 베타니아 (요한1. 28)와는 다르다. 후자는 페레아의 베타니아라고 한다 (대목27참고).
마르타는 그 이름이 뜻하는대로「마나님」「주부」이며 예수와 제자들의 물질생활을 기회있는 대로 보살펴 드렸고 (요한12. 1~8) 예수님은 이 자매를 사랑하셨다 (요한11. 5). 마르코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베타니아의 집에서 진지를 잡수신 이야기가 있고 그 집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으며, 식사중 한 여인이 순 나르드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기름발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르14. 3).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서가 전하는 이야기와 병행하는 것으로 그 어떤 여자는 마르타의 여동생 마리아이며(요한 12. 1~8) 나병환자는 예수의 치유를 받은 사람이고 아마도 마르타의 아버지거나 남편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The Interpreteri Dictionaryof the Bible. Martha항 참조).
마르타는 여주인으로서 자기 집을 찾아 주시는 주님을 「맞아들였다」고 했는데 「맞아들인다」라는 성서 귀절은 그저「손님 대접한다」 정도의 뜻의 아니고「주님으로 모시고 모든 봉사를 한다」라는 신앙적인 뜻을 지닌다. 그 반대의 경우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 동네에 들렀을 때 그곳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는 기사에서 볼수 있다 (루가9. 53).
하여튼 마르타는 예수께 대하여 신앙적인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신약성서의 예수를 섬기는 경건한 부인들중에 속하는 여자였고 요한복음이 말하는 대로 예수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여자였다. 그러니 자기 집에 오시는 주님을 맞는 그녀의 마음은 기쁨에 넘쳤을 것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아인들이 풍습에 따라 집에 손님이 오면 동네 사람들을 함께 초청하여 잔치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러니 부엌일 등 주부로서 바쁘기 이를데 없었다. 마르타는 한 마디로 주님을 섬기는데 활동적인 성격을 발휘하는 성격의 여인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그의 여동생 마리아는 명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 발치에 꿇어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후대의 영성신학자들은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는 봉사활동을 마르타형과 마리아형으로 나누어 활동수도자와 명상수도자로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도교회에서는 이 두 유형의 봉사활동을 성녀 리디아에게서 볼 수 있다. 티아티라의 옷감장수 여인 이디아는 주님의 도움으로 마음을 열고 사도 바오로의 복음말씀을 귀담아 들었고. 사도들을 자기 집에 초청. 묵게 함으로써 주님에 대한 봉사의 표로 삼았다 (사도16. 14이하).
오늘 이야기의 마리아는 후대에 베타니야의 마리아라고 불리면서 6세기경부터 일곱마귀에서 해방된 마리아 막달레나 (루가8. 2:대목80 참조)와 동일 인물로 취급하기로 하였고.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때 눈물로서 예수의 발을 씻겨 드린 죄녀와(루가7. 37~38:대목79 참조) 동일시 하기도 하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이 이견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오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언니인 마르타는 경황없이 봉사일에 분주한 것에 대하여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자기 여동생도 그 일에 같이 참여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예수께 말씀드렸다. 마리아로 하여금 자기 일을 거들게 해달라고. 이것은 질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당시 여자는 율법해설을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주님을 섬기는 신나는 일에 여동생도 참여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을 섬기는 진짜 봉사가 무엇인가라는 예수의 새로운 가르침이 나온다. 『마르타. 마르타』라고 정답게 부르셨다. 그리고 『너는 나를 대접하느라고 여러가지 일에 마음쓰고 있지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이 말씀을 놓고 학자들은 여러가지 접시가 필요하지 않고 오직 한 접시만 있으면 족하다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세상일에 너무 분주한데 오직 중요한 것은 내 말을 듣는것뿐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떻든간에 사도교회때 교회의 말씀을 전하는 말씀의 관리 두 직분을 반영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는 시편의 축복인 자기 좋은 몫을 택했다. 시편에는 「주여. 나의 몫은 당신의 말씀을 간직하는 일입니다」 (시편 119.57)라고 하였다. 주님을 섬기는 일중 가장 좋은 일은 그분의 말씀을 새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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