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면 여러 후보자들이 나서서 자신의 지지를 호소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왜 저런 고생을 하는가 의아심이 생겼습니다. 또 한마디 말을 나누어 보면 자신이 반드시 「당선되어야」하고 또 「당선되리라」 확신에 차있어 부럽기도 했습니다. 모든 후보자들이 다 자기는 이번에 틀림없이 당선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떨어질지언정 지금 확신에 찬 모습은 어쩐지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일말의 불안도 있었습니다. 저렇게 장담하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건가? 나 같으면 대단히 부끄러울 것 같은데, 그런데 떨어진 다음에는 「떨어져서 죄송합니다」하면서 온 마을을 돌아 다니고 있음을 보며 말로는 위로하는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차기를 노리구나!」하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들의 이런 확신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결론은 「자신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하는 것입니다.
가끔은 은근히 교만한 사람이 있어서 「나 말고 누가 있느냐? 혹은 아무도 나를 대적할만한 사람은 없다」는 자신감을 갖기도 하지만, 보통은 자신이 당선되기를 강력히 희망하다 보니까 모든 것을 당선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남이 그냥 듣기좋게 하는 말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반대하기 민망해서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자기편으로 간주하다 보니 이번만은 틀림없이 「당선된다」고 판단하게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 망하는 것도 보고 자신도 여러 차례 실패했으면서도 또 「이번만은!」하면서 재 도전하는 것을 보면 그 끈질긴 집념에 고개 숙여집니다. 역시 강한 희망이 이런 신념을 낳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도 국민학교에 다니는 딸과 엄마가 이미 한바탕 싸움(?)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딸이 「엄마는 거짓말쟁이」라고 내게 일러 바쳤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워커 맨」을 사 주기로 해놓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약속을 한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때가서 보자고 한 것이 어째서 사주겠다는 약속이냐? 고했습니다. 그것은 「그때에 다시 결정하겠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그때 가서 보자는 것은 그때에는 사주겠다는 말이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고 저 말을 들으면 또 그 말도 맞습니다.
엄마와 아이는 각각 자기편에서 희망대로 해석했습니다. 특히 이 아이는 「워커 맨」을 꼭 갖고 싶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갖게 되리라 믿고 있다가 못 갖게되자 크게 실망하고 엄마한테 대들었던 모양인데 엄마도 돈이 없다거나 사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매사에 딸한테 질질 끌려 다닐 수야 없다고 생각하고 이 기회에 엄마의 권위를 지켜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때에 가서 보자」는 말은 자기의 기대에 따라 다르게 알아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성경에서 도마 사도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에, 예수는 자기가 죽은 후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한 말을 듣기는 했지만 도마는 전연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기대하지 않은 것은 무덤을 가장 먼저 확인한 막달라 마리아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부활한 예수를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했고(요한 20, 11~16) 다른 제자들도 예수의 발현을 통하여 만나본 다음에야 그가 부활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예수의 부활에 대해 큰 기대를 가졌더라면, 빈 무덤을 발견하자 마자 「예수는 부활했다」고 큰 소리로 외쳤을 것이며, 조금만 생각했었더라면 부지런히 그리고 기뻐하며 부활한 예수를 만나러「갈릴레아」로 달려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부활에 대한 기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마 사도의 태도가 오히려 당연했습니다.
부활절을 지내며 내 자신의 부활에 대하여도 생각해봅니다. 내가 만일 내 자신의 부활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내가 부활 할 것이란 확신도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또 나의 부활을 믿지도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합니다. 「참으로 내가 부활 할 것을 믿는가?」 자신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대담은 그렇다고 하지만 어쩐지 자신이랄까, 확신이 없습니다. 역시 내가 기대하지 않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년 부활절을 지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활에 대한 확신과 그리고 결국 나의 부활로 이어질 때, 오늘 내가 지내는 부활절이 나에게 의미있는 축제가 될것입니다.
부활절이 되어도 정원에 한그루 백일홍만은 유난히 움츠리고 있습니다. 모든 나무가 새싹이 나고 이미 성급한 봄꽃들은 피었다 졌는데도, 새 눈은커녕 마치 마른 나무처럼 말라서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이지만 그냥 두고 기다립니다. 때가 되면 잎도 나고 꽃도 필 것입니다. 지금은 정원에서 보기 싫은 한 나무이지만, 미구에 여름철이 되어 만물이 녹음으로 짙푸를 때 홀로 빨간 꽃을 피워 정원에서 중심이 될 것입니다.
부활의 희망을 잊고 사는듯한 많은 형제들을 보며 그들의 맘 속에 남몰래 감춰진 희망이 하루속히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의 맘속에 희망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기에 나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움과 시련 중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해 줄 것입니다.
내 신앙의 척도는 내가 얼마나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가 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보다 굳건히 하려 할진대 하느님께 보다 큰 기대를 가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투표에서 떨어질 게 뻔해 보이는 후보자도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선거에 임하는데, 아무런 확신없이 신앙생활에 임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부활의 은총은 나를, 기대를 통한 확신으로 굳혀 나가도록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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