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특사로 로마 방문한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대통령 친서에 답한 교황 “한반도 평화 위해 기도드리겠다”
남북 대화와 협상 재개 위해
기도 요청하는 정부 뜻 전달
26일 교황 숙소에 초청 받아
예정보다 30분 길게 환담
“기꺼이 지원하려는 마음 느껴”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오른쪽)와 성염 전(前)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5월 27일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주정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특사로 임명돼 지난 5월 20일 교황청으로 떠났던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27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김 대주교는 이날 공항 귀빈실에서의 기자간담회 중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한반도의 위기 극복을 위해 외교적, 정신적으로 지원하고자 애쓰는 교황청의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성공적 특사 임무 수행
장시간의 비행 뒤였지만, 기자간담회에 나선 김 대주교와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등 교황청 특사단의 표정은 밝았다. 특사단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김 대주교는 “교황을 만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요청했고, 새 대통령의 업무 수행을 위해 교황청의 협조와 지지를 부탁했다”고 밝혔다.
특사단 일행은 교황과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나눈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 대주교는 “외교에서는 국익이 우선이고, 외교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리면 다음 행보에 지장이 될 수 있다”면서 “저와 국무원 총리 혹은 교황과 오갔던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식 라인을 통해 대통령에게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특사단의 우선 과제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우리 정부의 뜻을 교황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은 24일 오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특사단은 23일 국무원 총리 파롤린 추기경을 만나,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한국의 의견을 제시하고, 한국의 의견이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 대화에 반영되도록 요청했다.
성 전 대사는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지만, 한반도에 관한 주제가 있었다면 교황께서 한국의 의견을 반영해 말씀을 하셨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사단은 24일 오전에 이뤄진 일반알현에 참석해 교황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특사단이 문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기도를 부탁하자, 교황은 “한국을 참 좋아한다”면서 “당연히 기도해드리겠다”고 응답했다.
문 대통령은 친서를 통해 교황에게 “남북한 대립을 극복하고 전쟁과 핵 위협에서 벗어나서 평화의 길로 나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고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가 깃들도록 성하께서 기도해 주시길 정중히 요청 드린다”고 전했다.
■ 한반도에 대한 교황청의 애정 확인
김 대주교는 “교황께서도 한반도 상황을 아주 잘 아신다”면서 “항상 대화를 강조하신 교황께서는 이런 기조에서 남북한 사이의 대화와 화합, 평화를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교황은 지난 4월 말 이집트 사목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면서, 북핵에 대해 우려하지만 무력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으로 난국을 헤쳐 나갈 것을 당부했다. 대화를 강조한 것이다.
교황 알현에 앞서 특사단은 국무원 총리 파롤린 추기경을 만났다. 외교관계는 대부분 총리와 외교장관 선에서 조율이 되고 마지막에 국가 수장이 서명한다. 교황청에서도 국무원 총리가 국내외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특사단은 교황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파롤린 추기경을 먼저 만나 우리 정부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다.
김 대주교에 따르면, 파롤린 추기경은 문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도 보였다. 김 대주교는 “파롤린 추기경은 ‘한국의 새 대통령이 젊어 보인다. 한국 사람들이 젊은 대통령을 뽑았다’는 농담도 했다”면서 “추기경도 한국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특히 파롤린 추기경은 문 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축하사절을 보내고 싶다는 때늦은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김 대주교는 “파롤린 추기경이 5월 10일 열린 소박한 취임식을 몰랐는지, 또 다른 취임식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사절단을 보내겠다고 말했다”면서 “그만큼 교황청이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교황청의 관계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황청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47년 방 파트리치오 주교(메리놀 외방선교회)를 초대 교황사절로 임명해,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또 교황청은 국제사회에서 가장 먼저 한국을 국가로 승인했다.
■ 한반도 평화 위해 교황청 역할 기대
지난 4월 한반도 위기설 당시, 전 세계가 우려를 보였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선제타격이라는 대결적 의견을 제기했다. 이와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도 다른 논리, 즉 대화와 협상, 평화를 요청한 것은 교황청뿐이었다. 교황청은 세계정세를 예리하고 정확하게 판단하기로 유명하다. 1962년 쿠바사태도 성 요한 23세 교황이 개입해 막았다.
성염 전 대사는 “한반도 상황이 갈수록 위험으로 치닫고 일촉즉발의 대결이 부추겨지는 상황에서, 교황청만이 유일하게 대화와 협상 그리고 인도적 지원을 제시했다”면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걱정하는 교황으로부터 지혜로운 조언 등을 듣길 원했다”고 밝혔다.
성 전 대사는 “만약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이는 단순히 남북한 혹은 극동문제가 아닌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져 인류 대다수가 몰살되는 위기가 될 수 있다”면서 “문 대통령은 인류의 운명을 염려하고, 전 세계에 구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황청에 특사를 보내 함께 방안을 강구하고자 한 것”이라고 전했다.
김 대주교도 “교황께 직접적인 중재를 해달라기 보다는, 미국과 쿠바의 국교 회복을 위해 물밑에서 지원한 것처럼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고 원활히 대화할 수 있도록 측면지원을 해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면서 “대화와 협상으로 한반도 정세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실 것이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 성직자의 교황청 특사는 ‘관례’
보통 대통령 특사에는 명망 있는 정치인이나 외교관이 선정된다. 이번에 가톨릭교회 고위 성직자인 김 대주교를 특사로 임명한 것에 관해서도 교회 안팎에서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성 전 대사는 서구 사회에서는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고위 성직자를 교황청에 보내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성 전 대사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당선 뒤, 교황을 예방하기 전에 뉴욕대교구장 에드워드 이건 추기경을 교황에게 보내 인사를 했고, 스페인과 남미에도 이런 일은 예사”라면서 “이번 김 대주교의 특사 파견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성 전 대사는 “성직자 특사가 훨씬 효과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면서 “김 대주교가 특사로 파견됐기 때문에 교황청도 바쁜 일정 중에 시간을 내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문을 비롯해 이탈리아 주교회의 등 교황청으로서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황이 일반알현과 26일 산타마르타의 집 미사 초청을 통해 한국 특사단에게 만남의 시간을 내준 것은 한국교회의 위상을 보여준 한 사례라고 평가됐다. 15분으로 예정됐던 산타마르타의 집 환담 또한 45분이나 이어졌다.
성 전 대사는 “성직자가 특사를 하는 것이 교황청에는 더 효과적이고 예우 상으로도 좋은 결과를 내는 것 같다”면서 “교황청이 한반도를 위해 기꺼이 정신적으로 지원하고 외교적으로 지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김 대주교와 성염 전(前) 주교황청 한국대사(맨 왼쪽)가 5월 23일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환담하고 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제공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