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가난한 노동자들의 벗으로 살아온 고(故) 오영진 주교(Olivier de Berranger)의 추모미사가 5월 27일 오전 11시 서울 대방동성당(주임 주수욱 신부)에서 봉헌됐다.
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가 주례하고 서울대교구 유경촌 주교(사회사목 담당 교구장대리), 한영수 신부(한국 프라도사제회 책임자), 구요비 신부(서울 포이동본당 주임) 등이 공동 집전한 이날 미사에는 생전 오 주교와 함께했던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400여 명이 참례해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강론을 맡은 주수욱 신부는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오 주교님은 끊임없이 사랑을 너그럽게 행하면서도 연민의 정이 깊은 분이셨다”면서 “가난한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늘 약한 이들 편에 서 계셨다. 이제 영원한 세계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고 말했다.
최창무 대주교·유경촌 주교 등이 5월 27일 서울 대방동성당에서 봉헌된 오영진 주교 추모미사를 공동집전하고 있다. 사진 서상덕 기자
이어진 고별식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며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메시지가 전해졌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애도 메시지를 통해 “오영진 주교님은 18년간 노동자들의 벗으로 목자의 삶을 사셨다. 우리나라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노동자들의 벗으로 큰 위안이 됐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한영수 신부(한국 프라도사제회 책임자)는 5월 29일 오후 2시30분 프랑스 생드니교구 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된 장례미사에 참례해 한국 신자들의 사랑과 감사의 정을 담은 고별사를 낭독했다. 한 신부는 고별사에서 “오 주교님은 당신의 인품과 복음적 삶으로 우리 안에 있는 복음의 빛을 발견하게 도와주셨다”면서 “우리 앞에는 주교님께서 마치 한 알의 밀알처럼 죽어 있고, 여기 있는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는 큰 나무가 됐다”고 말했다.
오영진 주교는 1975년 서울대교구장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한국에 첫 발을 뗐다. 서울 구로구와 영등포구 등지에서 노동사목을 펼치며 노동자들의 벗으로 그들 곁에서 헌신했다. 또 프라도사제회가 한국에 뿌리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93년 고국 프랑스 베르사유 교구로 돌아가 1994년 로마 교황청 전교회 프랑스지부장을 맡은 뒤, 1996년 주교로 임명돼 생드니교구장을 역임했다. 7년 전 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최근까지 베르사유에 있는 노인 요양원에서 사목하다 5월 23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