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군종사관 후보생 신부가 5월 17일 충북 괴산 문무대 공수지상훈련장에서 수평이동 훈련을 받고 있다.
일찌감치 찾아온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5월 17일. 군종사관 제75기 후보생으로 입교한 신부들이 목청껏 ‘유격!’을 외쳐대며 훈련에 여념이 없는 충북 괴산 학생군사학교(문무대)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 왔다.
군사 훈련 가운데 가장 힘들다는 유격 훈련장을 격려 방문한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와 교구 총대리 서상범 신부,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 담당 이성운 신부 등의 얼굴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수십 년 전 자신들이 걸었던 길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유 주교 일행은 이날 오전 11시 학생군사학교장 권혁신(요셉) 소장과 교수부장 박상근 준장 등의 영접을 받으며 문무대에 도착했다. 권 소장으로부터 군종사관 훈련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유 주교는 곧바로 유격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공수지상훈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훈련장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유 주교 일행은 유격교관 김수근 소령으로부터 이날 훈련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이날 훈련 코스는 17번 수평이동과 18번 두줄타기. 유 주교 일행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피티(PT)체조에 열중하는 신부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 발목에 깁스를 한 이재경 신부가 일행의 눈길을 붙들었다. 유격 훈련 도중 착지를 하다 다리를 접지른 것이다. 급히 곁으로 다가간 유 주교는 이 신부의 손을 부여잡고 “신부님 괜찮아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조금 다쳤는데 곧 회복될 것 같다”고 말하는 이 신부의 표정은 의외로 밝아 보였다.
공수지상훈련장에서는 천주교 신부 19명과 개신교 목사 37명, 불교 법사 19명 등 모두 75명이 교관과 조교의 지시에 따라 까마득해 보이는 계곡을 로프줄에 의지해 건너고 있었다. 특히 여성목사 3명과 여성법사 1명은 악을 쓰듯 훈련구호를 외치며 훈련에 임해 오히려 지켜보는 이들마저 정신이 번쩍 들 지경이었다.
유수일 주교(앞줄 가운데)가 5월 17일 군종사관 후보생 신부들이 훈련을 받고 있는 충북 괴산 문무대를 찾아 격려하고 기념촬영했다.
유 주교는 유격 훈련 장면을 참관한 후 점심 식사를 위해 야외 강당에 모인 군종사관 후보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짧은 고통이 끝나면 큰 영광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군에는 방황하는 병사들이 많아 여러분들이 그들에게 겸손과 섬김의 자세로 빛이 되고 영혼을 위로하는 군종장교가 되길 바랍니다.”
유 주교의 당부에 신부들은 물론 목사들과 법사들도 떠나갈 듯한 환호와 박수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유 주교는 야외 테이블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함께 나누며 훈련을 마친 신부들이 앞으로 군사목을 펼치게 될 군별 분류(육군 12명, 해군 4명, 공군 3명)를 발표하고 재차 격려의 말을 전했다.
“혹시 불만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유 주교와 기념촬영을 마치고 6월 30일 충북 영동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열리는 임관식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다시 훈련장으로 향하는 신부들의 얼굴에서 굳은 각오가 읽혔다.
■ 군종사관 제75기 후보생 수원교구 이지성 신부
“동기 신부들과 매일 미사 봉헌하며 서로 위로 건네”
유격 훈련이 한창이던 5월 17일, 문무대 공수지상훈련장에서 만난 이지성 신부는 “10년 전 신학교 재학 중에 군대에 갔다 왔는데 군종신부가 되기 위해 재입대 하니 옛날 군생활 하던 기억이 난다”며 웃음지었다.
훈련 받기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첫 군복무 때나 지금이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만 함께 훈련 받는 동기 신부들이 있어서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고 답했다.
군종사관 제75기 후보생으로 문무대에 입소한 9개 교구 19명의 신부들은 2소대 3분대에 10명, 2소대 4분대에 9명이 배정돼 분대별로 같은 생활관에서 동고동락 하고 있다.
4분대에 속한 이 신부는 훈련기간 중 신앙생활에 대해 “문무대본당 주임 김영태 신부님의 배려로 주일미사에는 19명 신부가 매주 한 명씩 강론을 맡고 있고 하루 일과가 끝난 오후 7시에는 생활관 2층에 마련된 기도실에 모든 신부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하면서 서로 강론을 듣고 훈련 소감에 관한 나눔을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하루 훈련이 끝나고 나면 몸은 피곤하지만 동기 신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새로운 활력을 얻곤 한다”고 말했다.
“출신교구인 수원교구에만 있던 동기들이 이제는 9개 교구 19명으로 늘어나 임관 후 전국 어디를 가든 동기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군종신부만의 큰 장점”이라고 말하는 이 신부의 얼굴에서는 군사목에 대한 기대가 읽혔다.
이 신부는 개신교와 불교 성직자와의 교류에 관해서는 “생활관을 종단별로 쓰기 때문에 자주 만나 대화할 시간은 없지만 오가며 인사를 나누고 목사님과 법사님들이 군종장교가 되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타 종단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교관들이 훈련 과정에서 원칙을 지키면서도 성직자라는 점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에 감사한 마음도 전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