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참 신나는 추억입니다. 그리고 지난 날들은 생각할수록 즐겁습니다. 수학여행도 기억나지만 봄ㆍ가을 소풍 갔던 일들도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소풍가서 싸웠던 일 조차도 또 문제가 생겨 그 다음 날 선생님한테 하루종일 기합 받은 것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을 뿐입니다. 내가 왜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지 솔직히 생각해 봅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은 내가 대단히 자유로운데 과거 학생에게 가한 수많은 규제 속에 다시 갇히고 싶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못하게 하는 것도 많고 못 가게 하는 곳도 많았던지! 또 매 월요일 복장 검사, 불시 호주머니 검사, 그러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한창 담임 선생님이 불시 호주머니 검사를 해 오는데, 옆 친구가 얼른 내 모자(소지품을 일단 다 깨내서 모자에 담고 검사를 받았음)에 뭔가를 집어 넣으며 감추라고 했습니다. 보니까 담배였습니다. 나도 잽싸게 허릿춤에 찔러 넣었습니다.
나는 착실한(?) 학생으로 선생님이 인정하시므로 내게 대한 검사는 보통으로 모자에 내 놓은 것만 검사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내 옆 친구를 먼저 검사하시면서 평소에 의혹이 있는지라 호주머니 속까지 뒤졌습니다. 그러자 담배 부스러기가 조금 나왔습니다.『너 이리 나와있어!』『선생님 왜 그러십니까?』『너 담배 피지?』『아닙니다!』『이거 담배 부스러기 잖아?』『아닙니다. 땅콩 껍질입니다!』『아무튼 줄 밖으로 나와서 기다려!』하시고는 남은 사람들을 대강 대강 검사하고 그 친구를 데리고 교무실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도 줄 밖에서 그냥 기다린 것이 아니라 호주머니 속을 홀랑 뒤집어 다 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교무실로 가서도 어떻게 잘 버텨서 별 탈 없이 나왔습니다. 그후에 그 친구의 별명이「땅콩 껍질」이 되었습니다.
얘기가 빗나갔는데 내가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둘째 이유는 시험입니다. 내가 학생으로서 마지막 시험이라 생각했던 시험이 끝나는 순간에 지금까지 답안을 작성하던 볼펜을 책상에 콱 찍어 부러뜨리며『내 평생 시험은 끝났다』고 환호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후에도 여러번 시험을 쳐야만 했습니다.
아무튼 시험만 없으면 다시 한번 학창시절로 돌아가도 무방하리라 생각은 합니다. 아니 오히려 돌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옛날의 친구들이 그리워서 입니다. 그러나 모든 스승들은 제자들을 가르친후 아무 평가를 하지 않고 그냥 졸업시키려 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부활한 예수님도 사도들을 이 세상에 파견하시기전에 마지막 시험을 치고 계십니다. 시험 형식은 구두 시험이고 시험문제는 3개가 출제되었습니다.
요한 복음 (21, 15~17) 에서는 이렇게 전합니다.『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 당신은 이들보다 더 나를 사랑합니까?』베드로가『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고 예수께서『내 어린 양들을 먹여 기르시오』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다시 두번째로『요한의 (아들) 시몬,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내 양들을 지켜 돌보시오』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세번째로『요한의 (아들) 시몬,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하고 물으시니 베드로는 그분이『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하고 세번이나 말씀하시는 바람에 걱정이 되어『주님,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하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그에게 말씀하셨다『내 양들을 먹여 기르시오』.
예수님은 결국 한가지만 확인하고 베드로를 사도직에 합격시켜 파견하셨습니다.『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이 질문은 오늘 나에게도 하고 계신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나는 무엇 때문에 교회 일을 하는가?」스스로에에게 물어보고 있습니다.「사랑하기 때문에!」란 대답을 선뜻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내가 좋아서 한다」고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한 대답인듯 합니다.
만일 내가 예수의 질문을 시험 문제로 받았다면 분명히 낙방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가끔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감탄합니다. 그들은 참으로 제반 궂은 일까지 희생적으로 봉사하므로 성직자인 나 자신이 부끄러운 느낌이 든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본당 사도직에 간부였던 분이, 그 직분에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도 열성이던 분이, 그 직책을 물려주고는 모든 봉사에서부터 뒷전으로 물러서고 신앙생활까지도 최소한일성 싶은 경우를 보고 내가 못마땅해 한적이 있습니다.「그것도 감투라고…」「그것도 명예라고…」「결국 자기가 좋아서 한일 밖에 아니잖은가…?」이렇게 속으로 빈정거린 자신이 이제사 부끄럽습니다.
나도 말은「하느님 사랑하고 사람 사랑하므로」라고 하지만, 사실은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도「나 자신을 사랑하므로」였다는 생각에 부끄럽습니다.
다시 한번, 내가 사도직에 봉사한다는 것이 어떤 일의 실적을 올리고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사랑하라』고 파견 되었다는 것과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봉사를 하고 있다는 자각으로 자주 내 자신을 되돌려 놓아야겠습니다. 사도직 봉사가 힘들고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 오늘 예수님의 질문을 반복하고 그분의 판정을 추측해 보겠습니다.『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합격?… 불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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