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14, 17~11)
이어지는 교훈들은 잔치에 배석하는 사회생활을 무대로 주어진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교훈은 흔히 잔치 특히 혼인잔치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 예수님의 기호중의 하나이다.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높은 자리를 찾아다니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는 교훈이 예수께서 어느 바리사이파 지도자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한 말씀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이 이야기는 루가 복음서에만 나오는 대목인데 루가는 바리사이파 지도자집에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적는 김에 잔치에 비유되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여러가지 교훈들을 나열하는 편집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생활에서 식탁 예절은 우리 동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엄격하였다. 잔치가 크면 클수록 예절은 엄격하여 식탁에 앉는 순서는 손님들의 지위나 신분에 따라 상하가 정해졌다. 그리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맨 나중에 도착하였다. 유대아인들의 식탁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식탁의 머리가 되기도 하고 중앙자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식사중에 하느님 인식에 관하여 담소하면서 식사를 하였다.
예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식탁예절에 관한 교훈은 예언자적인 신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초대된 손님의 자격으로 하느님 나라의 사정을 식탁예절에 빗대어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의 말씀은 생생한 생동감이 있고 함축성이 있다. 다른 가르침의 말씀처럼 그의 교훈은 비유로 말씀하시며 그 비유는 현세생활의 경험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 잔치에 초대받는 구원의 가르침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자기 과시에 몹시 신경을 쓰고 있었다. 따라서 잔치에 초대되면 누구나 그 모임의 첫 자리를 탐하였다.
윗 자리에 앉으면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기대하였고 윗 자리와 인사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하늘나라 잔치에서도 같은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자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들의 자만심에 찬 편견을 시정하신다. 그분의 식탁 예절은 우선 구약성서 시대의 교훈적 격언을 바탕으로 한다.『임금 앞에서 잘난체 하지말고, 높은 사람 자리에 끼어 들지 말라. 높은 사람 앞에서「내려 가라」라는 말을 듣는 것 보다「이리 올라오십시오」라는 말을 듣는편이 낫다』 (잠언25, 6~7).
라삐들도 이와 비슷한 처세솔적 교훈을 가르치고 있었다.『모임에 가면 네가 앉을 수 있는 자리보다 두 세 자리 낮게 앉았다가 「올라 가시죠」라고 누가 와서 재촉하기를 기다려라. 이것이 「미안하지만 좀 내려 가 주시죠」라는 말을 듣는 것 보다 낫지 않느냐』. 율법학자들에게는 이 말들은 단순한 처세규칙이 아니고 사람의 됨됨을 판단하는 윤리규칙으로 통하고 있었다.
체면치레를 중시하던 우리의 유자(儒子)들과 같은 처세술이라고 할수 있다. 각 민족마다 남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한 현명한 처세술이지만 그처세술을 다른 사람의 칭찬과 존경을 받기위한 인생목표로 삼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위선에 빠지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예수님의 잔치석상에서의 몸가짐에 관한 가르침은 천국잔치에 임하는 태도이며 이 태도는 무엇보다도 실제로 「작은 자」가 되라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누가 혼인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가서 앉지 말라』라고 한 말씀은 유대아인들이나 동양의 유교에서 가르치는 처세의 격언과 비슷하지만 은근히 높은 자리를 생각하며 낮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과 아주 낮은 자리에서 만족하고 앉아 있는 것과는 다르다.
낮은 사람이 되는 것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기본 조건이라는 것은「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 천국을 차지할 것이라는 산상 교훈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자기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일주일에 두번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성전에 바친다며 하느님 앞에 자기를 추켜 올리는 바리사이파 사람보다 스스로 죄가 많다고 가슴을 치며 용서를 비는 세리가 하느님 나라에서는 더 높임을 받는다는 (루가18, 9~14) 하늘나라의 이치를 예수께서는 앞으로도 강조할 것이며 이 겸손은 가톨릭 수도생활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하느님이 자만과 세속의 명예욕을 왜 싫어하시는지는 우리의 사회생활의 분위기에서도 알수 있다. 제자들조차 하늘나라에서의 서열다툼을 하고 있을 때 (루가22, 24) 예수께서는 심부름하며 봉사하는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품위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이 높여 주시는것이지 자기 자신이 발버둥치며 탐욕을 부린다고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명예와 명성은 다른 사람들이 높이 보아 주는 것으로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격언적인 교훈은 예수께서 만년에 가서 비로소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을 보면 이 역설적인 말씀을 알아 듣기 위하여는 먼저 어느 정도의 복음적 수양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 교훈은 예수의 수난예고를 납득시키면서 곁들여진 교훈이다 (루가 16, 15 : 18. 14 마태 18. 4 : 마태23, 12). 초대 사도교회에서 사도들도 이 정신을 생활화하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고린후 11, 7 야고 4, 10 : 베드전 5, 6 로마 12, 16 : 디모전 6, 17) . 높게 살려고 애쓰면 무리가 따르고 얕게 살려고 하면 덕성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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