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치온 이단
마르치온은 영지주의자들 중에서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흑해 연안의 시노뻬의 상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친은 그리스도교의 주교였다. 그는 영지주의적 주장을 하였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파문을 받고 쫓겨났으며, 140년 경에 로마에 와서 이단학파를 조직하였기 때문에 144년에 로마교회로부터 또 다시 파문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교회의 틀 안에서 영지주의 이론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마르치온 이단이 교회에 미친 위험과 해독은 매우 컸었다. 그래서 교회는 마르치온에 대해 계속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그를「사탄의 맏자식」이라고 단죄하였다. 그의 이단은 로마교회로부터 공적으로 단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00년경부터는 그의 추종자들이 줄어들었지만, 5세기까지도 시리아에 그의 추종자들이 남아있었다. 그는「반대 명제」(Antithesis)와」「서간집」(Apostoilkon)을 썼지만 모두 유실되었고, 교회의 많은 반(反)이단 저술가들의 문헌, 특히 떼르뚤리아노의「마르치온 논박」이란 저서에 폭넓게 인용되어 있는 구절을 종합해 보면 그의 주장을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다.
그는 윤리적으로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악의 문제에 대한 독특한 개념을 갖고 있었으며, 사도 바오로의 신학에 깊이 영향을 받아 구약의 모세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세상의 창조주인 구약의 신은 사악하지는 않지만 세상의 악의 원인이 되며, 율법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물질적인 제사를 요구하며, 보복과 정의와 분노의 신이라고 단정한다. 반면 신약의 신은 사랑과 자비와 구원의 완전한 신이며, 예수 안에 인격화된 하느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약의 신은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해 예고된 알려진 신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다가 예수에 의해서 비로소 계시된 새로운 신이라는 것이다. 마르치온은 이러한 반 유대교적인 성향에 따라 구약성서 일체를 거부하며, 신약성서에서는 루가 복음서와 바오로의 10개 서간만 인정하고, 히브리서와 사목서간들을 거부한다. 루가 복음서를 인정하는 이유는 루가가 바오로의 제자였다는 점 외에도 루가 복음서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가 복음서 1~3장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 사화 부분을 삭제하였는데,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 가현설 때문이었다. 그외 그리스도의 육화, 수난, 죽음, 부활 그리고 인간 육신의 부활과 구원을 부인하는 것은 영지주의자들의 논리와 같다. 한편 교회는 마르치온이 신ㆍ구약성서를 자기의 이론에 따라 취사선택한 것에 대항하여 성서의 정전목록을 확정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몬타니즘 이단
몬타니즘(Montanism)은 2세기 중엽 소아시아의 프리지아에서 몬타누스(Montanus)에 의해 시작된 이단으로서 영지주의 이단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급속도로 동ㆍ서방에 퍼져나가 5~6세기에 가서야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뽑히운 영적 사람, 「비추임을 받은 사람들」이라 자처하면서, 직접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집회에서 초기교회에 넘쳤던 은사적 특은들을 새롭게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초기에는 일종의 성령쇄신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몬타누스는 원래 이교도에서 개종한 후에 이 집단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의 추종자 쁘리쉴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 두 여인과 함께 종교적인 체험과 환시를 통해 방언과 예언을 하면서 성령의 신탁(神託)을 받아 전한다고 하였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성령이 발현한다는 소문이 번져나갔으며, 그들의 집회에서 무아경과 경련과 집단 히스테리 같은 비이성적인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초창기의 몬타니즘은 성령이 내려오심과 그 은사들을 강조하였을 뿐 아직 이론적 정립을 하지 못하고 다만 몇가지 행동규범을 제시하였다. 단식같은 재계가 도입되고, 동정생활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면서 결혼은 경시되었다. 그래서 부부라 할지라도 별거하는 것을 권장하였다. 또 세상의 종말이 곧 도래할 것이므로 신도들은 깨어 준비하고 있다가 새 예루살렘과 천년왕국을 맞이하도록 뻬뿌자(Pepuza)에 모여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다음 떼르뚤리아노 시대에 와서 몬타니즘은 이론적으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칼타고의 대학자 떼르뚤리아노는 206년부터 몬타니즘에 빠져들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소아시아에서 시작된 몬타니즘이 서북 아프리카의 칼타고에까지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엄격하고 극단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떼르뚤리아노는 뛰어난 필치로 몬타니즘의 이론을 정립하였다. 평신도였던 그는 극단적인 윤리생활을 강조하면서, 한 배우자가 사별한 후에 재혼하는 것은 간음과 같이 불가하다고 하고, 박해중에 피신하는 것도 배교와 같은 큰 잘못이며, 배교와 살인과 간음을 저지른 대죄인의 경우에는 교회도 사해줄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는 또한 신자 공동체의 보편적 사제직을 강조하면서 반 교계주의(反敎階主義: antihierachismus)를 부르짖었다. 그는 성령에 의한 내면적 교회와 주교들에 의한 외적인 교회를 대비시키면서 성령에 의한 내면적 교회만이 참되고 진실되며 구원을 가져다 주는 반면 주교들에 의한 외적인 교회는 인위적이며 멸망을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
정통교회의 교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 평신도 운동은 교회로부터 단죄받았으며, 많은 교부들은 복음과 정통교리에 입각해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몬타니즘의 현상과 이론을 볼 때 근래에 개신교나 우리 가톨릭 안에서 일고 있는 비정상적인 성령운동을 연상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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