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관한 증언입니다. 제1독서는 고난받는 야훼의 종에 대한 두 번째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이란 나라로 끌려가서 압박과 설움을 받을 때 구원자를 보낼테니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하는 내용입니다.『너는 나의 종으로써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야곱의 지파 뿐만 아니라 땅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라』고 종에게 명하십니다. 여기서「너」란 누구인지 분명치는 않으나 구원자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정체성(正體性)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초인만큼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는데 「하느님의 어린 양」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고 말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여러분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고 증언하며, 『예수님은 각 처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주님이시라』(1고린 1, 2-3)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는 요한의 증언에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첫 번째로 알아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나보다 앞서신 분」,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합니다.
2, 「나보다 앞서신 분」「저기 가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분이 앞서 오고 지나 가시는」동안 그분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왔다 간 사이」란 짧게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이요, 길게 보면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 승천까지의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예수님 삶의 한 부분만 봐서는 안되고 전 생애를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영원으로부터 계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육적으로는 분명히 요한보다 늦게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당시 민중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으며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사악한 왕이던 헤로데도 두려워 할 정도였습니다 (마태 14, 4). 이렇게 막강한 민중의 지도자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저 분이 구세주이시니 앞으로는 나 대신 저분을 섬기라고 증언을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성령께서 알려주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기보다 훌륭한 분임을 자기의 입으로 알리는 장면입니다. 지금도 유대교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축일을 그리스도 성탄일보다 더 큰 축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보다 앞서신 분임을 알리기 위해 복음서 저자는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3, 「천주의 어린 양」이라고 호칭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양은 희생 제물로 제사 때 사용되던 짐승입니다. 양은 가축들 가운데 가장 순하고 주인의 말을 잘 듣습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순한 어린 양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죄를 말하면서 양의 머리를 꾹꾹 누르고는 그 양을 숲속으로 내쫓아 사나운 짐승들에게 잡아먹히게 했습니다. 죄로 죽어야 할 인간 대신에 양이 그 죄를 뒤집어 쓰고 대신 죽음으로써 속죄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리야산에서의 이사악 사건 때 이사악 대신 어린 양이 바쳐졌고(창세기 22장 전체)출애급 사건때 어린 양의 피를 잡아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되었습니다. (출애급2, 3-13). 예수님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어린 양 같이 십자가상에서 피흘려 희생제물이 되실 것이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과연 그 결과로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을 가리켜「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4,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제자들 중 베드로도 예수님을「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만 (마태16, 16) 요한보다 훨씬 후 3년 동안 예수님을 추종한 후 알아차렸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물어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마태 16, 16)
5, 요한은 예수님을 자랑스러이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증언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해집니다. 우리도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야합니다. 어린 양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 길은 영광의 길, 즐거운 길이 아니라 가시밭길, 십자가의 길, 희생의 길입니다. 희생은 구원을 낳습니다. 부모님의 희생으로 자녀들이 살 수 있듯,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없이는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희생없이 영광만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3D라 해서 어려운 일을 싫어합니다. 부동산 투기니 뭐니해서 한탕주의로 쉽게 많은 돈을 벌려고 하다보니 엄청난 부정을 저지르게 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번 돈을 흥청망청 써댑니다. 정당하게 번 돈은 아까워서 함부로 쓰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십자가의 희생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십자가를 피하려 해선 안됩니다. 십자가와 예수님을 동시에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동양은 예수님 없는 십자가를 지고 있고 서양은 십자가 없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예수님 없는 십자가란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고통스런 삶을 말하는 것이요, 십자가 없는 예수님이란 희생의 고통없이 구원받으려는 안락한 생활을 말합니다. 양쪽 다 잘못된 경우입니다. 구원은 어린 양처럼 참된 희생의 바탕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일상생활에서 평생 동안 고백해야 할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도 응송처럼「당신 뜻을 따르려 이 몸이 대령했나이다」하고 응답하면서 살기로 하십시다. 성탄과 새해의 어수선함과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어린 양의 길을 가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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