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어느 여성단체에서 「부엌에서 세계가 보인다」는 책을 내었다. 「어린이들이나 가족에게 안전하고 맛있는 식품을, 아름다운 물과 푸르름」이란 구호를 내세우며 그녀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이었다. 이 제목을 처음 대했을 때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자질구레한 일상생활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나아 갈 수 있다는 종교적인 진리가 담겨진 내용을 아주 현실적으로 잘 짚어서 이야기한 것 같아서 말이다. 사실 여성들은 자질구레한 집안일만 늘 해야하니 자연히 소심해지고 생각의 폭이 좁다는 선입견이 내게는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듯이 자질구레한 그녀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여성들은 삶의 본질, 현실을 파악하는 면에서는 오히려 남성보다 더 앞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여성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이 경험을 하게 되었다.
3년 전 생명의 공동체 단체를 만들자는 취지의 뜻을 모아 시작을 했을 때 생명을 살리는 일은 우리나라의 주부들의 대명사 「살림꾼」이란 말처럼 주부, 여성들의 힘을 모아야 된다는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 따라 이 단체를 시작했을 때 염려가 없던 바는 아니었다.
남성 위주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대량생산 소비주의 편리주의에 도전하고자 식품공해, 수질오염 등을 공부하는 여성들의 열의와 그녀들의 일상적인 삶을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는 의지는 대단하였다. 물을 지켜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빨래를 손으로, 반자동으로 해보겠다는 의지와 구체적인 실천, 합성세제인 삼푸를 끊어야 하는 선택의 기로, 화려한 옷차림에서 수수한 옷차림으로, 메니큐어를 칠한 손이 아름다운 손만은 아니라는 진실을 깨달은 여성들은 생활 하나하나를 고쳐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까지 당연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상생활의 방식을 하나하나씩 바꾸기 시작하였다.
시중에서 마냥 싸게만 나오는 계란이 결코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공부한 주부들은 생명이 있는 유정란 계란을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낡은 자전거를 타고 이 집, 저 집 배달을 해준다. 오직 생명을 살리는 일은 여성의 일이라는 신념과 이웃에게 알리고 함께 나누어 먹는 일에 동참하여야 한다는 생각뿐인 것이다. 오죽하면 우유 배달하는 아주머니가 계란을 집집마다 배달해 주는 그녀들을 보고『나처럼 오토바이 한 대를 사야 더 돈도 많이 벌 것』이라고 말을 했을 정도라니……
공동주문을 받은 무농약 쌀을 둘 창고가 없어 할 수 없이 좁은 자기 집 마루에 두니 집안 식구들의 눈치는 오죽하겠는가만은 이 일이 내가 생명을 살리는 농민들과 주부들을 위해 해야 될 일이라 생각하면서 견디어 내는 그녀들을 보면 참 대단한 저력이요 열정이라고 감탄할 때가 많다. 또한 수도자로서의 내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음을 감사드린다.
그녀들과 여러가지 모임을 주선하고 소공동체 모임, 안전한 먹을거리 나눔활동 등을 하면서 그녀들이야말로 현실안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교육 문화 경제를 꿰뚫어 보는 것같아 은근히 한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93년을 맞이하는 올해에도 생명을 살리는 여성들이 여성 특유의 통찰력으로 생명의 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삶의 문화가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모시는 하느님은 생명을 살리시는 하느님이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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