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지난 87년에 연재, 독자들의 깊은 관심을 모았던「성소의 온상」(87년 4월 19일자부터 총15회 연재)을 금년 성소의 날을 기해 다시 시도한다. 많은 성직 수도자를 배출하고 대대로 신앙을 이어오는 전국의 신자촌을 찾아 이들의 삶과 성소자 배출의 배경 등을 집어보는 이 기획은 핵가족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신자들에게 성소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줄것이다.
<편집자주>
25년사를 준비하고 있는 안동교구에 비해 배가 넘는 50년사를 준비하고 있는 안동교구 함창본당.
이곳은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때 문중박해로 상주군 이안면 양범리 배모기로 낙향, 그 이듬해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서광수의 사정에 의해서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돌마래미(저음리) 감바우(아천) 잣골(척동) 등지에서 살던 신자들이 함창으로 이주하여 신앙이 전파됐다.
서광수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후 천주교를 받아들였으며 이듬해 을사추조적발사건에 연루되어 피난왔다. 서광수의 가정은 신앙에 충실해 5남 서유도의 부인이 1813년 지방박해때 문경한 시리에서 순교하고 증손자 서익순(요한)과 서태순(베드로) 형제가 병인박해때 서울과 상주에서 순교했으며 서인순도 대구감영에서 옥사하였다.
이렇듯 서광수의 가정은 열심한 신앙생활로 후손중에 6명의 순교자가 났으며 특별히 2남 서유오의 후손인 고손자 서상돈은 대구교회 창립시에 큰 몫을 담당하기도했다.
이러한 신앙적 배경을 안고 48년 공평본당 함창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첫주임으로 밀알회를 창설한 고 김동한 신부의 부임으로 시작된 함창본당은 고 이명우 몬시뇰을 비롯하여 26명의 사제와 40명이 넘는 수도자를 배출했다.
본당설립당시 1천4백여명의 신자에 지금도 대구에서 버스로 3시간이나 걸리는 오지에서 이렇게 많은 사제ㆍ수도자가 배출된 원인에 대해 함창본당 신자들은『본당분위기가 성소에 열정적인 탓』이라고 단언한다.
자식을 교회에 바친 부모들이 다른 신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그부모들의 삶이 또한 모범적이어서 신자들 사이에 집안에서 성직ㆍ수도자가 나오는 것이 하나의 열망이 된 것. 이런 분위기가 지금도 이어져 대도시 어느 본당에 비해도 적지않은 6명의 신학생을 보유하고 있다.
함창본당 주임 정호경 신부는 이에대해 모든 것에 있어『사례가 중요한 것』이라면서『선배들이 성소를 받아 정말 신명나고 바르게 살 때 그 모습을 통해 성소가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 오는것』이라면서 기존 선배사제들의 성소에 충실한 삶은 성소 못자리로서의 첫째 요인으로 꼽았다.
함창본당이 안동교구내 성소의 온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역대본당신부들의 성소에 대한 깊은 애정.
김동한ㆍ강찬형 신부 재임시의 준비기간을 거쳐 성소발굴에 깊은 열정을 가졌던 5대주임 고 왕묵도 신부의 재임시 무려 10여명의 신부가 서품되어 본당신부의 관심 여하에 따라 성소자의 증감이 큰 영향을 받음을 보여주고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왕묵도 신부가 본당신부로 16년간이나 재임했다는 점.
본당신부의 재임기간이 길수록 그 본당 교우들의 신앙정도와 생활상을 깊이 알아 성소발굴의 원동력이 되었던 점이다. 6년간 재직한 7대주임 김재순 신부 재임시에도 5명의 사제가 탄생,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독일인 왕묵도 신부는 재임기간동안 지금의 상지여상의 전신인 성경강습소를 1959년 성당내에 설립 수도자 배출에 큰 역을 담당했고 세번째이자 지금의 성당을 신축했다.
본당사정을 고려치 않고 행정편의 위주로 사제들이 이동하는 현상이 빈번한 요즘과 비교해서보면 신자들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고 그들의 삶 속에서 형제애를 찾고 이런 바탕속에서 성소가 발굴되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본당신부의 재임기간은 어느정도 보장돼야 할 필요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볼수있다.
이와함께 함창본당에서 배출된 사제ㆍ성직자의 배경을 보면 집안의 인척관계가 많다는 점이 또 하나의 특이점. 정양모ㆍ정학모ㆍ정웅모 3형제 신부와 4촌 정기모 신부, 이성길ㆍ이영길 형제신부 정일, 정지훈 삼촌 조카관계 등 한 집에서 사제가 많이 배출되어 신앙정도와 가정기도생활이 성소를 키우는 가장 큰 못자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신자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기도가 성소후원의 전부였던 과거에 비해 79년 교구차원의 성소후원회가 본당마다 조직되고 안동교구 평협의 제1주안사업이 성소후원인 점으로 보아 예전보다 체계적인 후원과 변함없는 성소에 대한 열정으로 더많은 사제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인데도 실제 속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정호경 신부는 이에대해『사회구조적 모순』이라면서『시골에서 성소를 위해 2~3년간 영적ㆍ학업적으로 준비해도 성소에 대해 2~3개월 준비한 대도시의 학생에 비해 성적이 뒤떨어져 신학교 입학이 어렵다』고 꼬집었다.
정호경 신부는『신학생의 선발기준이 너무 성적위주』라면서『참사제의 삶을 살 수 있는 인간됨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것』이라고 안동교구 제일의 성소온상에서 외쳤다.
다음은 함창공소시절을 포함한 교구별 함창본당 출신사제들이다.
이명우 김영옥 김규태 정재완 이성우 이상호 정학모 김부기 정기모 김흥수 김영호(이상 대구대교구), 김욱태 이설길 이춘우 이영길 유재준 공한영 김영필 정일 정상업 김도겸 정지훈 이희정(이상 안동교구) , 이상호(레문도ㆍ부산교구) , 정양모(예수회) 정웅모(서울대교구) 이 가운데 김부기 정웅모 김흥수 김영호 신부는 함창이 고향이나 타본당에서 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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