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시골에서 방앗간 집은 보통 부잣집이었습니다. 내가 알던 방앗간집도 상당히 부잣집이었는데 그 집에는 딸만 셋이고 아들이 없어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아주 늦게 아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집의 귀한 외아들은 온 동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귀하게 여기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아이를 때리거나 욕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울리기라도 할라치면 동네사람들이 귀한 집 자식 울린다고 더 성화였습니다.
그 녀석이 같이 놀자면 놀아줘야 하고 학교에 갈 때 가방을 들어 달라면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울어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배운것이 있습니다. 부잣집 사랑받는 아이는 집 밖에서도 영광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미군부대에 들어 가려고 정문에서 신분증 교부를 받는 사이에 한사람은 자동차 안과 트렁크를 검사했습니다. 그때 자기 나라사람들이 탄차는 아무 검사도 받지 않고 모두 그냥 통과 했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몇년전에 영국에 갔을때 생각이 났습니다. 자기 나라 국민들과 E. C. 공동체, 미국 그리고 일본사람들이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었는데 신분증과 입국 신고서만으로 너무 쉽게 입국도장을 찍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외 다른 나라 사람들은 줄을 서서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고 또 얼마나 까다롭게 짐 검사를 하고 별 것을 다 물어본 연후에야 통과시켜주었습니다. 그때도 국력 즉 부자 나라라는 것과 제 나라에서 주권을 인정 받는 국민이라야 외국에서도 상응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미국 L. A. 에서 발생한 폭동사태를 보며 느끼는 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떠나는 것이 이 땅에 그냥 사는 것 보다 더 낫다는 생각에서 떠났을 것이며 그것은 어쩌면 제 나라에서 사랑이나 가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주권 국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외국에 나가서도 다른나라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하대를 받을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가 일본같이 국제적으로 보다 강국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당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웃 나라 사람들도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부자라면 이웃사람들의 여론과 성화가 더 심하게 거셀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은 이 왕조국을 떠나 사는 같은 처지에 서로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며 살았더라면 혹시 피해가 적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서로 단결된 모습은 서로 사랑함에서 얻어지는 결과일 것입니다.
집안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나가서도 괄시 받지 않음은 교회의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합니다. 교회안에서 신자간에 형제적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서로를 존경하고 인정받는 사람은 나가서도 신자로서 존경을 받고있는 것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세상에 강요할 수 없는것중에 하나는「나를 사랑하라」는 강요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어디 강제로 됩니까? 어쩐지 맘에 안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쩐지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맘대로 되지않는 것을 어떡하란 말입니까?
그래서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사랑을 계명으로 주신 모양입니다. 사랑하는것은 사랑받는 방법입니다. 사랑 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어쩌면「남을 사랑하는것」은「나를 사랑하라」는 타당한 강요일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될 것이다』
오늘 L. A. 교민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고국에서 불편없이 살고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평소에 그들에 대하여 작은 관심도 사랑도 갖지도 들어내지도 않음으로써 형제임을 세상에 들어낸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약탈당하는 광경을 보며 나는 약탈하는 자들에 대하여 분노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이 생긴 후 떠들썩하게 모양새 갖추는 행사, 얼굴 내밀기식 체면치레와 탁상 회의, 또는 자기 선전의 기회로 삼아 이용하는 행위 등으로 오히려 그들을 슬프게할까 두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상 생활 가운데 작은 관심과 사랑을 들어냈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반성해야 할것입니다.
오늘 복음성서를 묵상하면서, 자기 집안에서 사랑 받듯, 자기 나라에서 가치를 인정 받는 사람이 외국에 나가서도 괄시 받지 않듯, 그렇게「이 세상에서 사랑 받던 사람은 저 세상에 가서도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확인 받음으로 영광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아버지는 힘이 있고 하느님의 나라는 부유한 강국 입니다. 누구도 어떤 악한 세력도 우리를 위협하거나 약탈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 나라의 국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은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음으로 하느님 나라의 한 국민임을 드러내는것 뿐입니다.
나는 자주 나 자신이 사랑 받고있음을 확인하기로 결심해 봅니다. 나는 내 가까이 있는 누구로부터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면 계명대로 먼저 사랑하려 노력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사랑받고 예수의 제자로 인정받아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길이며 보증임을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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