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2017년 대한민국의 정의와 화해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주제로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제17회 가톨릭 포럼이 열리고 있다. 사진 최용택 기자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회장 황진선, 담당 허영엽 신부, 이하 언론인협)는 ‘정의’와 ‘화해’를 화두로, 오늘날의 사회 상황에서 종교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6월 1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연 제17회 가톨릭 포럼이 그 장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불교 등 3대 종단 정의·평화 활동 관계자들이 ‘2017년 대한민국의 정의와 화해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다. 발제는 남재영 목사(한국기독교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도법 스님(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장), 박동호 신부(서울 이문동 주임, 서울대교구 전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등 3명이 맡았다.
발제자들은 새 정부의 출범이 우리 사회에 두 가지 과제를 던진다는 데 공감했다. 하나는 지금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해묵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때라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서로 생각이 다른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화해와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자들은 자칫 긴장 관계에 놓일 수 있는 정의 실현과 화해를 바탕으로 한 통합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참된 대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사랑과 자비,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는 우리 사회 안에 이러한 대화를 꽃피우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음은 각 주제 발표 요지다.
■ 제1발제 ‘상극 넘어 상생으로, 오래된 미래의 길 화쟁 찾아야’
도법스님(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장,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더불어 함께하는 ‘화쟁’의 길 통해
상대방 인정하고 동반자로 여겨야
정의와 화해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먼저, 제거해야 할 불의의 세력을 전제하는 정의론으로 화해가 가능할 것인가? ‘정의’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상대를 함께할 수 없는 존재라고 전제한다면 화해를 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둘째, 화해 없이 사람들이 희망하는 평화가 가능할까? 싸움의 과정과 결과는 항상 파괴적이다. 적을 전제하는 한 평화는 불가능하다.
붓다는 구도에 나서 공평무사한 우주보편의 길, 오래된 미래의 길을 찾았다. 그 길에는 남남은 없고 “서로 의지하고 함께할 이웃, 동반자가 있을 뿐”이다. 더불어 함께하는 그 길이 화쟁((和諍)이다. 화쟁은 상극을 넘어 상생으로 가는 오래된 미래의 길, 우주 보편의 길이다.
붓다는 편견 없이 소통, 공감, 합의하고자 끊임없이 대화했다. 화쟁의 대화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창조해내는 인류보편의 길이요, 희망의 길이다. 소통과 공감으로 합의를 이룰 수 있고, 서로 화합하면 못할 일이 없기 때문에 대화는 삶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도구다.
사회문제를 인식할 때 ‘공동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바다의 물과 파도처럼 한 몸 한 생명이다. 서로를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로 여기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볼 때, 편을 갈라 서로 싸우고 서로 원한 맺고 상대를 극복대상으로 삼는 상극의 20세기는 지나갔다. 한 몸 한 생명의 관점에서 서로 원한을 풀고 서로 함께하는 상생의 21세기가 도래했다.
■ 제2발제 ‘1997년 재벌경제체제 폐기하고 국민경제체제로 바꿔야’
남재영 목사(대전 빈들교회 담임, 한국기독교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촛불국민혁명’은 적폐 청산의 요청
거짓 폭로하는 예언자 역할 수행을
‘촛불국민혁명’은 시대정신으로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정신은 새로운 사회와 국가로 나아가라는 요구다. 이른바 ‘적폐 청산’의 요청이다.
한국이 청산해야 할 과제를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경제적으로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를 국민경제로 대체하는 과제다. 재벌중심체제는 불의한 현실을 야기했다. 불의한 현실을 두고 화해를 말하는 것은 거짓이며 죄악이다.
둘째, 한반도 평화공존 체제의 부활을 통해 남북의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촛불혁명의 정신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라고 요구한다. 그러한 정신은 남북의 적대적 대립과 군사적 대결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평화통일의 발판을 다질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셋째, 정치적으로 국민주권이 실현돼야 한다. 광장의 촛불은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국민 직접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라는 요구다. 나아가 국민직접 입법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권력의 주인인 주권자가 위임해준 대통령과 여타 국가 기관의 권한을 국민이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자본을 하느님으로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종교가 정의와 화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초리를 빼들고 자본의 종아리를 내리치는 일이다.
두 번째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눈물 흘리는 자리에 서서 함께 비를 맞으면서 그들 편에 서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세 번째 역할은 거짓을 꿰뚫어 보면서 이를 폭로하는 예언자의 역할로서, 정의와 평화와 생명이 화해의 바다로 흘러가도록 빈들에서 외치는 사명이다.
■ 제3발제 ‘교회 안팎에 가톨릭 사회교리 널리 알리고 실천해야’
박동호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이문동본당, 전 정의평화위원장)
교회의 사회참여, 인간 구원이 목적
사회교리에 비추어 세상과 대화해야
교회와 세상은 완전히 분리되거나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여하는 관계에 있다. 교회가 세상에 관여하는 동기와 목적은 현세적 야욕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과 인간 사회의 쇄신이다.
급변하는 세계는 다양한 도전을 제기한다. 경제적 세계화, 생태 환경의 위기, 불의한 사회 질서 등이 모두 포함된다. 4대강 사업, 밀양 송전탑 건설, 핵발전, 남북 군사적 긴장, 제주강정해군기지, 미국의 사드 배치, 빈부 격차, 세월호 사건, 백남기 농민 사건, 촛불과 태극기 집회 등이 그것들이다.
천주교회의 사회교리는 이러한 사회문제와 세상일에 관여하는 교회의 대화 언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회교리에 비추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재를 해석하고 적절한 행동을 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의와 자비, 사회적 화해 문제를 자연, 인간, 사회생태를 모두 포함하는 통합 생태의 문제로 확장시켰다. 교황은 ‘통합의 생태’를 향한 ‘전환’을 위해서 시민들이 정치권력을 단속하고 통제하려는 압력의 행사까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회의 사회 참여, 즉 ‘사랑의 고발과 제안과 투신’은 항상 ‘대화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대화는, 교회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 인간존엄과 공동선에 대한 확고한 신념, 정직함과 용기, 투명함과 개방성을 갖출 것을 전제로 한다.
정의를 말하려면, 말하는 사람이 듣는 이의 눈에 정의롭게 보여야 한다. 따라서 교회가 정의를 말할 때, 교회는 스스로 정의를 실천해야 하고, 교회의 얼굴에서 사람들이 정의와 화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