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요셉상호문화학교 설립 위해 ‘나눔의 향기’展 여는 김남순 수녀
비워냈더니 기도가 됐다
소박한 색채와 여백 살린
수묵담채화 40여 점 공개
이주민·탈북민 자녀 대상
통합 대안학교 위한 전시
14~20일 서울 갤러리1898
42년 전 수녀회에서 첫 서원 선물로 받은 ‘벼루’가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녔던 그림에 대한 열망이 벼루에 얹혀 매화, 난, 국화, 대나무 등으로 표현됐다. 동양화의 담백함, 비워져 있는 여백의 의미는 그대로 구도자로서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가 됐다.
김남순 수녀(안나·77·사랑의 씨튼 수녀회)가 6월 14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여는 ‘나눔의 향기’전(展)은 묵향(墨香) 속에 써내려간 수도자의 그림일기를 보는 느낌이다. 전시에서는 그가 수십 년의 수도생활 동안 차곡차곡 그려 모아온 시기별 작품 40여 점이 선보인다. 문인화의 대표적인 소재 사군자(四君子)에서부터 여러 자연의 모습들이 수묵담채화 특유의 소박한 색채와 여백 속에 담겼다.
이번 전시는 김 수녀의 첫 개인전이다. 수녀회 소식지 등에 그림이 소개된 적은 있으나 대외적으로 많은 이들과 작품을 나누는 것은 처음이다. 수도회가 설립 진행 중인 성요셉상호문화학교 준비에 보탬을 주기 위해서 용기를 냈다.
“성요셉상호문화학교는 국내 최초의 통합 교육 대안고등학교입니다. 우리 수도회가 21세기 다문화 사회를 준비하는 통합교육의 장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문제 등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고자 하는 수도회의 의지가 실려 있습니다.”
전남 강진에 세워질 성요셉상호문화학교는 외국인노동자가정 자녀나 탈북청소년 등 이주배경이 있는 학생들과 여러 위기에 처한 일반 학생들이 함께 교육을 받는 대안학교다.
“학교 설립 책임을 맡은 후배 이영신(로사) 수녀의 ‘지금 꼭 필요한 학교’, ‘우리가 반드시 도와야 할 아이들’이라는 간곡한 설득을 외면하기 어려웠다”는 김 수녀는 “전시 결정 후 잠을 못 이룰 만큼 걱정도 했지만,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다른 이들과 나누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에게 내보일 만큼 높은 수준이 아닌데, 쑥스럽고 부끄럽다”고 소감을 밝혔지만 그의 작품은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으로 세계평화미술대전 특선에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림은 김 수녀에게 하느님과 대화하는 자리다. “수묵담채화의 말이 없는 듯 있는 듯한 고요함”이 좋다는 그는 “많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 항상 생각하는 과정에서 비움의 삶을 묵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특별히 자연 속의 소재들을 주로 다루면서 “꽃과 나무, 산과 들 풍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생각한다”고 했다.
“자연을 보고 그리면서 나를 고집하지 않고 하느님 섭리에 맡기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수도자로서 온전히 내려놓고, 온전히 비우는 것도 익히게 되죠.”
김 수녀는 “그림을 통해 편안함을 느끼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 그런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시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전시는 20일까지. 수익금은 성요셉상호문화학교 학교설립과 운영 기금으로 쓰인다.
※문의 02-727-2336~7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