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평신도 스스로 신앙을 연구하고 받아들인 특이한 교회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독자적으로 신양을 받아들여 복음을 전파한 이 땅에 신앙선조들의 얼이 서려있는 「성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중 우리가 물려받은 신앙유산중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이 땅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기 시작한 때부터 세워지기 시작한 주님의 집, 즉 성전을 지적 할 수 있다. 본보는 초창기 이땅에 세워진 성전, 특히 사적지로 지정된 성당을 순례하는 난을 마련, 신앙 선조들의 가르침을 가슴에 되새기고 나아가 생활중에 신앙을 실천함으로써 복음화를 앞당기는데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교회내에서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는 명동성당부터 시작한다.
서울은 물론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종교의 중심지, 특히 한국천주교회의 요람을 서울 「명동」이라고 지칭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선교구의 주교좌였을뿐 아니라 현재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인 명동성당은 한국교회의 모본당, 한국내 고딕식 건축물의 효시 등 역사적인 중요성과 함께 국내의 다른 사적지 성당과는 달리 현대사안에서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서 독특한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된 이후 본격적인 정치무대 및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명동성당은「유신」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민주주의의 보루 및 상징이며 동시에 타 종파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그리스도교의 심장과 상징으로 확고한 자리를 다지고 있다.
명동성당은 2백여년 전인 1784년 지척에 있던「수표교」근처에서 신앙 공동체가 처음 탄생해 1785년 봄 현재의 성당 부근에 있던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가 열린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조선교구 제7대 교구장 블랑 백 주교가 신앙의 자유가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이전인 1882년 이곳을 본당으로 설정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설정된 본당인 명동본당은 한국천주교회사와 기원을 함께 하면서 한국교회사 전개과정에서 항상 중심지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정치ㆍ사회ㆍ문화의 중심지로서 한국교회 및 사회의 발전에 선도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1892년 착공돼 1898년 준공한 개화기 서양식 건축의 대표적 건물로서 서양 고유 건축양식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재현된 역사적ㆍ건축적 가치가 인정돼 1977년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명동성당은 한국교회 건축의 외관을 규정지우게 할 정도로 한국교회건축의 원형이며 전형으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또 1백여년의 박해 후에 결실된 기념비적인 존재로서 그리스도교의 표상이된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세워진 가장 순수한 형태의 고딕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는 명동성당은 1900년 이전에 세워진 서양식 건축중 가장 크고 보존이 잘된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아울러 명동성당은 초기서양식 건축물중 일본을 통하지 않고 순수한 형태로 전래된 건물이며,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벽돌 교회당으로서도 의의가 큰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동성당은 신앙의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백주교의 명을 받은 고(Coste) 신부의 설계ㆍ감독하에서 1887년 하반기부터 대지정지작업, 주교관건립 등의 공사가 시작됐다.
종현성당 자리에 자리잡은 당시 종현성당은 외국인 선교사의 노력과 함께 서울과 인근 지방교우들의 노력봉사와 금전적 지원 등 모든 한국 교우들의 관심속에 1892년 8월 5일 백주교 후임인 뮈텔 주교가 대성당의 머릿돌을 축성하면서 대역사의 기공식을 가진 이래 6년여만인 1898년 5월 29일 성령강림대축일에 성당 축성식을 가졌다.
성당 건립공사에 돌입하기 이전인 대지 구입당시부터 대지분쟁에 휘말릴 정어려움을 겪은 명동성전 공사를 시작했으나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으로 중국인 기술자들이 본국으로 귀국함으로써 공사가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공사시작 4년여만인 1896년2월 설계자이며 공사 총 책임자였던 고신부가 별세, 당시 본당신부 및 경리신부로 있던 프와넬(박도행) 신부가 건축학을 연구하여 남은 공사를 마무리하는 등 우여곡절속에 완공됐다.
또한 선교사 및 외국인의 도움으로 완공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명동성당이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가 건물의 머릿돌을 놓으면서 당시까지 조선에서 활동했던 모든 주교들과 선교사 및 조선교회를 도운 은인들의 명단을 비롯 성당건축에 자원봉사로 참여했거나 금전적인 면에서 참여한 신자 1천명이상의 명단을 함께 밀봉하여 묻었던 점에 비춰볼때 명동성당 건립에 한국교회신자들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속에 빛을 본 명동성당이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적인 풍화작용과 각종 오염, 시위 등에 무방비 상태로 시달리면서 훼손의 위험속에 방치되기도 했다.
특히 명동성당은 건축 당시 고신부와 프와넬 신부 등 2명의 사제가 공사 설계 및 감독을 하는 도중에 설계도면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성당이 손상되거나 파괴됐을때 복원이 어려운 큰 숙제를 안고 있었다.
또 성전 건립을 앞두고 있는 대부분의 본당들이 한국 교회의 전형인 명동성당을 모델로 성전 건립을 희망하고 있었으나 명동성당의 설계도면이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명동본당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82년 명동성당 역사중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는 성당 신축 설계도면을 완성하여, 이 자료를 토대로 성전 복원사업을 추진, 84년 제1단계를 마무리했고 이어 86년도에 성전앞 광장공사까지 끝냈으며, 88년도에는 성전 보존ㆍ보수작업의 최종작업으로 종합보고서인 명동성당 실측 설계도면과 함께「명동 성당건축사」를 발간하게 됐다.
준공 직후「독립신문」에 총 공사비 6만달러(84년 한화기준 1백6만5천달러)의 공사비가 소요된 것으로 보도된 명동성당의 건축 규모 실측 설계도면으로 보면 건물 총길이 68.25m, 폭 29.02m, 몸채 높이 23.435m, 종탑 높이(십자가 제외) 46.07m이며, 건축 면적 427.14평, 연면적 612.61평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명동성당이 갖고 있는 중요성은 성당건물 자체와 함께 성인들의 유해가 묻혀 있던 성지인 지하성당과 1890년 건립한 한국교회 최초의 주교관이며 한국 최초의 조족조(벽돌식)건물인 교구청입구의 사도회관도 보존해야할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이 건물의 보존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할 것으로 요청되고 있다.
역사적인 측면과 건축학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갖고 있는 명동성당 실측도면 작성작업을 총괄한 김영섭(시몬)씨는 『명동성당은 천주교회사적인 관심과 함께 한국근대사의 중요한 일부분을 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한국 현대 건축의 여명기에 서양의 건축양식이 우리나라에 도입 전개된 양상을 살피는 건축사적 입장에서 명동성당이 갖는 의의는 무엇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교회 내외적인 상징성을 갖고 있는 명동성당이 건립 이후 여러가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현재 주교좌 상부에 걸려있는「닫집」은 「강대」와 함께 뮈텔 주교 성성 25주년 기념으로 제작, 설치됐다가 변경된 것이며, 전면 성단근체에 있던 성가대 발코니는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보수공사로 다시 반으로 축소됐다.
또 성당의 바닥도 원래는 마루바닥이었으며 의자가 설치되지 않았으나 1950년대 말경 장궤의자가 도입되기도 했다.
명동본당은 교회내적일뿐 아니라 한국사회에 중요한 사적지인 명동성당을 보존하고 성지로 지켜나가기 위해 다른 본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전보존분과위원회」를 본당사목회의 한 기구로 발족시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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