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졸업식이 옛날같지 않아서 썰렁한 느낌마저 주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떠나는 아쉬움과 떠나보내는 서운함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습니다. 이번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회자 정리(會者定離)」니「형설의 공(螢雪의 功)」이니 해가며 서로를 위로하고 또 손을 마주 잡고 자주 만나기로 약속도 했었습니다.
나의 졸업식이라면 역시 국민학교 졸업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기억하는 것은 졸업식 날 행사에서 두 낱말만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가사대로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애국가의「하느님」이란 말이었고 또 하나는 졸업가의 「언니」란 말이었습니다.
그때 천주교회는 반드시「천주님」이란 말을 썼기 때문에 어린 생각에도 우상숭배가 될까봐 애국가를 노래할때도 나는 반드시 속으로 「천주님이 보우하사」로 고쳐서 불렀습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가 뭡니까? 남자는 모름지기「형님」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또 속으로「형님」으로 고쳐 불렀습니다. 그때부터도 남의 말 꼬투리 잡아 물고 늘어지는데는 소질이 있었나 봅니다.
아무튼 옛날에는 졸업식이 거창했었는데, 요즘은 졸업하는 학교는 미련없이 떠나면서 새로 입학하는 학교에 대하여 더 큰 기대와 자부심을 갖는 듯 합니다. 졸업은 누구나 하는 것이되 입학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더욱 축하 받을 만한 일입니다. 상급 학교에 합격하기가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입학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는 영광이요 부모에게는 효도입니다. 그래도 졸업식이 옛날 같지 않음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예수 승천 대축일에 제자들은 졸업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학생들이 떠난 것이 아니라 선교님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대신에 학생은 그대로 있고 선생님이 바뀌게 됩니다. 이 학교가 이제까지 소학교였는데 이제는 틀을 갖춘 상급하교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선생님이 주관하던 어린 학생들이 아니라 이제는 자치회를 결성하여 스스로 뭔가 회의를 하고 결정을 내리고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상급학교 학생이 된것입니다. 떠나시는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위로자「빠라글리또」를 새 선생님으로 소개하시고 떠나셨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제자들은 새로운 상급학교와 새 선생님에 대한 기대로『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겪으면서 이미 시험지옥을 벗어나 상급학교에 진학할 만큼 성장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깊은 좌절을 맛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에게 가졌던 꿈은 예수의 죽음을 보는 순간 온통 깨져버렸습니다. 그들의 메시아가 맞대결 한번 못하고 이렇게 맥없이 주저 물러 앉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도 하늘에서 천사의 대군이 나타나 병사들을 무찌르고 예수를 구출하리라 기대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같이 하기로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한채 동가숙서가식(東家宿 西家食)하며 따라다닌 것이 물거품이 됨을 확인하고 허탈한 상태가 되어 방황했던 경험이 지금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바로 자신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제야 그들이 얼마나 세상일에 묻혀 하느님의 일을 외면하고 지냈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났던 순간 제자들은 한편으로 기쁘고 반갑기도 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를 마주 보기에 면목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성세에는 그런 말이 없지만 부활한 예수를 만났을때, 며칠 전의 자신들의 비겁한 행동에 대하여 정중한 사과를 했을 것 같습니다.
순진하고 성미 급한 베드로가 가만히 있었을리 없습니다. 사과한 후에도 미안하고 부끄럽고 송구스런 마음은 가눌 길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위해서라면 이제 목숨이라도 바쳐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신들도 모르게 그들은 이미 성장했습니다. 다시말해 상급학교에 진학할 준비가 다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좌절중에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중요합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알아보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한참을 같이 동행하면서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부활한 그리스도와 너무도 가까이 대화하며 지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내지는 않는지… 어쩌면 나에게 실망을 준 바로 그 사람이 부활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있지만 내가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지 않은지…부활한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눈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자격이었습니다.
해마다 예수승천 대축일을 지내지만 올해는 상급학교 학생다운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성령강림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새 선생님이신 성령을 맞이해야겠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상급반에 상응하는 신앙인이 되기로 결심해야겠습니다.
세상일에 묻혀 마음이 하늘을 향하지 못하던 제자들처럼 미구에 후회할 좌절은 사양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하늘을 올려다 보며 한번 심호흡을 깊이하고 창공을 향해 멀리 내품으면서 예수님과 함께 내 마음을 하늘로 올려 보내야겠습니다.
내 마음이 하늘로 향할때 나도 승천하신 예수님 따라 승천하여 하느님 나라로 가게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땅에서 내게 베풀어주시는 승천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비록 우리를 이 땅에 남겨주고 떠나셨지만 동시에 우리를 이끌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우리도 새 선생님께 대한 기대와 함께 졸업과 진학을 서로 축하하며 더불어 기쁨을 나누어야겠습니다. 적어도 내가 혹은 가족이 대학 입학시험에서 합격했을 때만큼!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