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가 들려 벙어리가 된 사람을 고쳤고 이에 대한 두갈래 반응은 예수의 기적을 보고 전대미문의 놀라운 일이라고 경탄하는 의견과, 이를 반대하는 무리들로 대조를 이루었다(대목183참조).
이제 같은 이야기가 겹쳐서 서술되는데 그것은 베엘제불 논쟁으로 이끄는 유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눈도 멀고 말도 못하는 소경벙어리를 데려 왔다.
이 사람은 마귀가 들려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중점을 이룬다. 악마의 세력을 쳐 이기는 하느님의 손길을 부각시키려는 것이 복음사가의 뜻이기 때문이다.
기적에 대한 군중의 반응은 찬사에서 한 거름 더 나아가 예수를「다윗의 아들」로 점 찍는다. 그 당시의 민중들은 다윗의 아들을 메시아로 알고 있었다. 민중의 일부가 예수신앙쪽으로 기우는 것은 예수의 적대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예수의 적대자의 대명사로 알려진 바리사이파인들은 (마르꼬는 율법학자, 루가는 그들 중 몇몇이라고 했다)민중의 생각을 역설득하려고 예수의 기적을 악의 세력으로 돌린다. 그것은 마귀의 두목인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 낸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마귀를 쫓아 내는 구마(驅魔)는 그들을 에워 싸고 있던 주변적국들 즉 이교도들에게 성행하였었고 그 방법은 무당굿거리를 이스라엘인들이 배척하는 방법으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베엘제불(라틴역본에는 베엘제붐)은 유대아인들이 이교들의 신을 경멸하여 부르던 명칭이다(열왕하1,2). 그 뜻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는데 혹은 「바알신의 왕자」「똥의 주님」,「사랑의 주님」,도는 그저「악마」로 알려져 있었다. 후기 유대아사상에서는 베엘제불은 마귀 또는 악마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사탄이란 말로 받아서 대응하였다. 그것은 한 동네 한 집안도 마찬가지이다. 한 공동체가 서로 갈라져 싸우는 것은 망조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니 사탄이 사탄을 내 쫓는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논리는 어거지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적대자들의 말대로 예수께서 마귀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 냈다 하더라도 악의 나라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느님의 구세사는 창세기부터 하느님 나라와 악마의 나라의 대결에서 하느님 나라의 승리라는 구세사로 엮어진다.
당초에 하느님의 천지창조는 선한 세계의 전개였고(하느님이 보시니 참 좋았다) 이를 망가뜨리는 악마의 잔꾀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창세기 창조 이야기 창조).
예수께서 구세 사업을 시작 할 때에는 마귀와 유혹이란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복음선포와 불쌍한 사람, 병자들의 구제에도 어김없이 적대자들이 도전을 걸어 왔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구세사는 하느님과 사탄의 혈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탄」이란 말은 히브리어로서 볼때 「길을 가로 막는자」민수(22,22·32)란 뜻으로 하느님의 길을 가로 막는 적대자란 종교적인 뜻을 가진다. 이 말은 「쓸모없는 자」란 뜻의 벨리알, 「독약의 천사」라는 뜻을 가진 사마일 등과 동일시되어 쓰여지기도 하였다.
구약성서에서는 사탄은 사람을 하느님께 나쁘게 고자질하여 망하게 만드는 자(욥기1,6~12),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거슬러 싸우도록 부추기는 자(역대상21,1)로 나타난다.
후대 유대아 사상애서 창세기 3장에서 이브를 유혹하여 죄에 빠드리게 한 뱀을 사탄으로 생각하면서(지혜2,24) 인간사회의 행복을 시기하고 온갖 악을 뿌리는 악마로 생각하게 되었다(집회21,27) .
이러한 뜻으로 사용되던 사탄이란 말은 신약성서 시대에 와서 「디아볼로스」라는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복음서에서는 마귀 또는 사탄이란 말로 혼용하였다. 신약성서에서「사탄」이란 용어는 33번, 「디아볼로스」란 말은 32번 사용되어 있는데 유혹자(마태4, 3: 데살전3, 5: 고린전7, 5) 악한 자(마태13, 19: 1요한 5, 18) 고자질 하는자(묵시12,10) 원수(마태13가 10,39;루가10,19) 불평하는 자(1베드5, 8) 마귀왕(마태9, 34: 12, 24: 마르3, 22: 루가11,15) 세속의 지배자(요한12, 31: 16, 11) 공중의 권력자(에페2, 2)란 뜻으로 사용되어 있다.
그러니 사탄의 적대자는 하느님인데 사탄이 어떻게 악과 싸우겠느냐는 것이 예수님의 논거였다.
두번째 논거는 이러하다. 마귀가 사탄의 대명사인 베엘베불의 이름으로 추방된다면 바리사이파 사람들 너희의 사람들도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 낸다는 말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논거로서는 맞는 말씀이지만 20세기에 사는 우리에게 구마라는 관습이 성행했던 그 당시의 사정이 좀 우습게 들린다.
예수의 말씀은 여기서 구세사적 테두리에서 하느님의 힘과 악의 세력과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알아들어야 할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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