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재소자들과 개인면담을 하던 중이었다. 최고수(사형수)인 바오로 형제가 『수녀님을 꼭 만나뵙기를 원하는 인숙이라는 재소자 한사람이 있는데 개신교신자입니다. 한번 만나 주시지요. 교무과에 보고전도 냈답니다』하고 말해왔다.
그말을 들은후 며칠 지나서 과장에게『과장님 저를 만나기를 원하는 인숙이라는 재소자가 있다는데 한번 만나게 해주세요』말했더니 과장은『수녀님 그 사람이 얼마나 성격이 포악하고 말썽꾸러기인지 1주일이 멀다하고 싸움질에 동료이거나 아버지뻘되는 직원들에게도 욕을 퍼붓고, 닥치는대로 싸우고 치고 받고 하는 사람입니다. 안만나시는게 좋을거예요』하였다.
그래서 나는 『과장님 그런 문제의 사람일수록 상담이 더 필요한것 아닙니까? 만나게 해주십시오』하고 말했더니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한주일후 과장은 인숙이를 연출해 왔다.
첫대면날 그는 명랑하게 웃으면서 젊은아이들이 흔히 할 수 있는 몇가지 질문을 하였다.「창조설」「아담과 하와의 본죄」「죄 지은 것을 알면서 왜 사람을 만드셨는지」「진화론」등의 질문이 오고갔다.
폐방시간이 다 되어 상담실을 나서면서 그는 두서너번 뒤를 돌아보며 갔다. 세번째 면담때 그는 『수녀님 저는요 공식기도문도 다 외웠고, 교리공부도 혼자 많이 했거든요 영세받게 해주세요』했다.
나는 『영세는 빨리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리를 넉넉히 잘 배운 다음 받아야 변화가 옵니다. 잘 배워서 천천히 받도록 하세요』라고 말했으나 강력히 졸라대서 할 수 없이 안수녀님께 집중교리를 배우도록 했다.
그후 그는 교무과장님실에서 일반수 한명과 함께 요한이라는 본명으로 주수욱 신부님께 영세를 받았다. 그러나 영세후에도 자주 싸움을 해서 독거실에 들어갔다.
그는 영세를 받은지 수개월후 천주교 담당관을 통해 나를 따로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를 소개해 주었던 바오로 형제가『수녀님 요한이를 만나실때 꼭 수녀님의 사진한장을 지참하시고 만나주십시오』했다. 『왜 수녀 사진을…』하고 반문하자 『수녀님 그저 제가 말씀드리는대로 하시면 차차 아시게 될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성모의밤 행사때 찍은 스냅사진 한장을 가지고 갔다. 천주교담당관이 요한을 데리고 왔다. 요한은 우리 곁에 앉아 입회하려는 담당에게『담당님, 수녀님께 비밀 말씀을 드릴 일이 있으니 자리를 잠깐 비워주십시오. 간절한 부탁입니다』했다. 담당관이 나가자 요한은 머리를 숙이고 침묵에 잠기더니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저 사실 말씀이예요. 제가 생후 백일만에 엄마와 생이별했답니다. 그리고 저희 집에는 누나와 여동생과 저 삼남매가 모두 배다른 형제들입니다. 저는 스물세살이 되도록 꿈속에서도 엄마가 너무 보고싶었습니다. 외삼촌을 찾아가 생모가 계신 곳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고, 온갖 수단을 다 쓰고, 공갈ㆍ협박까지 한 끝에 겨우 엄마가 계신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알아냈습니다. 저는 엄마를 만날 희망에 부푼 꿈을 안고 설레이는 가슴으로 새벽기차에 올랐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기차가 느리게 가는것 같았어요.
마침내 포항역에 내려 엄마 계신곳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 작은 가슴이 팡팡 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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