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성령강림 대축일에는 기다려지는 편지가 있습니다. 그 편지는 예수의 이름으로 쓰여져서 내게 배달되는데 읽어보면 그 발신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봉투만 봐도「아, 올것이 왔구나!」하며 봉투를 뜯습니다.
그 편지 내용은 예수의 입장에서 1년동안 나를 지켜 본 평가와 함께 잔뜩 칭찬을 한다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실제 편지를 쓰는 자기에게 관심을 더 가지라는 것과『만일 네가 그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예를들어「그가 지금 너와 함께 교외로 나가서 냉면을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는 꾸짖음과 함께 그렇게 해주는 것이 나 예수를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일러줍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개는 예수님이란 분이 쓴 편지가 시킨대로 합니다.
그 편지에는 반드시 올해에 내가 성령으로부터 받게될 특별한 은총이 들어있습니다. 성령의 일곱가지 은총중에서 한가지를 정해 줍니다. 슬기, 통달함, 의견, 굳셈, 지식, 효경, 그리고 두려워함중에서 한가지를 아마도 심지를 뽑아서 보내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한가지 간절한 은총은 한번도 뽑히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말씀의 은총도 받는다는데 사도행전의 베드로처럼(사도행전 2장) 내가 한국말로 말하면 외국사람들이 자기나라 말로 알아듣는 은총을 받고 싶은데, 언제나 그런 은총을 받을 수 있을지…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못 알아 들을 바에야 나라도 은총으로 여러나라 말을 잘하든지…
나는 보통으로 기죽는 일이 드문 편인데,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사람을 만났을 때는 다릅니다. 여러나라 말을 배웠지만 하나도 제대로 하는 말이 없어서 답답합니다. 꼭 만나야 할 일이 있으면 겁이납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내가 여러나라 말을 잘 하는 줄 알고있나 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부담스러우면 나한테 자꾸 갖다 붙혀주는데 그 고충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실수해도 부끄럽지 않을 때 배짱이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말라 비틀어진 자존심이라도 파묻어 버리든지, 한번씩 그런 일이 있고나면 괜히 나 혼자 화가나서 나 자신에게 투덜대곤 합니다. 『진작 말 좀 배워놓질 않고 여태 뭘 했던가!』후회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또 시간나면 술 마실 궁리는 해도 말 배울 연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긴 성서(사도행전 2장)에 보니까, 성령을 받으면 술 마신 것과 비슷한 모양이니 술이라도 마셔서 성령 받은 기분이나 낼 생각입니다. 확실한 것은 나도 술이 한잔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말을 하려면 성대에서 소리가 나오고 입술과 혀가 협조해서 공기를 진동시키면 공기의 파장이 듣는 사람의 고막을 진동시켜 무슨 뜻인지 의사가 전달 됩니다.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말이 되는 것은 예수의 육화 신비라면 공기의 진동 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가 듣는 사람의 고막에 닿아 의사전달이 되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라 하겠습니다.
과학적으로 탐지되는 진동자체는 과학적으로는 그냥 진동에 불과하고 그 진동을 아무리 분석해도 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공기의 진동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진동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 듣습니다. 감지할 수 있는 진동에 따라 감지 되지 않은 뜻이 전달된 것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성령의 존재는 감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세상의 역사와 사건안에서 전달 되고있습니다.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간여하신 성령은 육화된 말씀이 일생을 살아감에 항상 함께 하셨기에 그리스도의 일생 삶 자체가 하느님 말씀의 육화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성령이 이 시대에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대하고 또 믿습니다.
우리는 진동이라기 보다 격동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비록 우리가 오관으로는 감지 할 수 없지만 성령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뜻이 전달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음으로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의 뜻을 알아 듣게 됩니다.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에 우선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는 은총을 구해야겠습니다.
말씀의 뜻을 알아듣는 사람에게만 성령의 7가지 은총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가지 은총들은 모두 그분의 뜻을 올바로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외국어를 잘 하고 싶으면 듣는 연습부터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들을 줄 아는 자는 말할 줄도 압니다. 독백이 아니고 대화할 줄 압니다. 나아가 들을 줄 아는 자는 효력있는 기도를 할 줄도 압니다. 따라서 들을줄 아는 자만이 성령의 은총을 받게될 것입니다.
이번 성령강림대축일에는 나 자신이 듣는 훈련을 통해서 모든 은총을 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아직도 예수의 편지가 도달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내 청원이 꼭 이루어질 것 같아서 기다려집니다. 성령의 은총을 미리 맛보며 기다리는 뜻으로 거품 적당한 맥주 한잔을 생각하며 냉장고를 향하는 마음이 즐겁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