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네 사람들은 누구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 내느냐』의 말씀으로 보아 예수님 당시에 구마식이 성행하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의 적국인 바빌로니아가 국가위기에 처했을 때 갈데아지방의 마법사들이 그 불행을 면하기 위하여 구마식을 행한 것을 비웃는 이야기가 있는데(이사47, 9. 12) 이것은 하느님의 힘을 무시한 아무런 수법도 쓸데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구마에 대한 또 하나의 이야기는 사울왕 시대에 주님의 영이 사울을 버린 후 왕에게 악령이 불어 괴롭힐 때 다윗이 칠현금(漆弦琴)을 타며 성시(聖詩)를 읊어서 잠시나마 악마를 쫓아내고 왕의 고통을 덜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무상16, 14~23). 그후 유대아인들에게는 다윗의 성시가 불행을 쫓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 하나의 구마의 이야기는 토비아가 대천사 라파엘의 명령을 받아 물고기의 간과 염통을 불에 태워 악령을 내쫓고 아내 사라와 신방을 차렸고 에집트 고산지대로 도망간 악령들을 라파엘이 직접 붙잡아 광야에 묶어 놓았다는 이야기이다(토비6, 8~9:8, 2~3).
후기 유대아민족의 구마관습이 통속화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민족사적 그리고 종교적 역사요인이 있다. 첫째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군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이후 끊임없는 외세의 압박을 받으며 이것을 종교적으로 해석한데서 시작된다. 둘째는 인근 민족 아씨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샤 등 이교도들의 마귀사상의 영향이다. 앞서 언급한 토비아의 구만식 이야기도 이 영향의 민속화된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세째는 민족적 고난을 당하고 있는 유대아인들에게 예고된 즈가리야의 종말론적 예언이다. 이 예언에서 즈가리야는 민족의 급기야는 죄를 씻고 부정(不淨)함에서 깨끗해지고 이교도들의 우상을 물리쳐 깨끗하지 못한 악령들의 시달림에서 벗어나라는 경고를 했다(즈가13, 1~6). 이러한 민족의 수난사를 겪으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들이 존경하는 마지막 성조 솔로몬의 지혜에서(열왕상4, 29~34)탁월한 구마기술자로 솔로몬왕을 추앙하게 되었다. 기원전 1세기의 지혜서는 솔로몬의 지혜를 하느님의 지혜로 찬양하면서 그 지혜는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고 마귀들의 힘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다(지혜 7, 20).
예수 당시 사람들이 솔로몬의 방식으로 마귀를 쫓아 내는 관습이 성행했다는 것은 1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아의 고대사」에서 그때의 사정을 소개한 것에서도 드러난다(고대사8권2장5). 복음서에서도 예수 당시에 돌팔이 구마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고(마르9, 38: 대목 137참조), 사도행전에서도 사도 바오로를 영험의 기적행적자로 추앙하면서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는 것을 보고「바오로가 전하는 예수의 이름」을 도용하여 구마를 한 스케바 형제들 이야기가 나온다(사도19, 13이하).
이러한 배경을 알고 보면 바리사이파인들이 예수를 마귀두목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낸다고 모함한 것은 솔로몬이나 그 밖에 훌륭한 영험자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군중에게 납득시키려는 악렬한 모략임을 알 수 있다. 『너희들 사람들은 누구의 힘을 빌어 마귀를 내쫓느냐』한 예수의 대답도 그들의 구마행위를 인정, 시인하는 뜻이 아니고 그들의 통속화된 일반관습에서 논거를 찾은 것에 불과하다.
그 논거는 예수께서 악령을 쫓아 냈다면 그것은 악령의 힘이 아니고 하느님의 영이 해 낸 일이다. 여기서 악령의 세력과 하느님의 성령의 영역이 대조되면서 악령은 쫓겨 나고 하느님의 나라가 임재해 있음을 강조한다. 병행귀절을 이루는 루가복음서는(11, 20)하느님의 영이란 말대신 하느님의 손가락이란 표현을 썼다. 이 두표현은 성서사상에서 같은 뜻을 지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손 또는 손가락은 창조하는 힘, 적군을 물리치는 힘, 십계명을 창조하는 힘(출애8, 15:31, 18:신명9, 10:시편8, 3)등으로 나타나며 이 사상을 이어 받아 교회는 성령을 찬미하며『오소서 성령이여 창조주시여…당신은 일곱가지 은혜지니신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 손가락』이라고 노래한다(성무일도서성령강림 제1 저녁기도 찬미가).
힘센 사람의 집을 약탈하려면 더 힘이 세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힘센 악마의 집안과 더 힘센 하느님의 능력을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왜 남의 집을 약탈하는 비유를 썼을가. 아마도 하느님의 뜻에서 물러 간 사울의 세력을 쳐 이기고 다시 하느님의 집안을 일으키는 다윗의 이야기를 빗대어 말했을것이다(사무하 2장). 또는 이사야서에서 야훼께서 강적바빌론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시는 이야기를 상징했을 수도 있다(이사49, 24~26).
그러나 지금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노획물들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의 실천이 중요하다. 사랑을 실천하는데는 하느님의 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악마가 지배하던 시대와 대조되는 예수의 시대는 사랑의 시대로 넘어간다.
사탄과 예수사이에는 싸움이 있을 뿐이다. 악과 선사이에는 중간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싸움에서 예수의 편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악마의 편일 수 밖에 없다.
이 대목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씀과 반대되는 것 같지만 각기 문맥이 다르다(대목137참조). 「나와 함께 모아 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라고 한 것은 앞으로 전개될 하느님 나라에 많은 양떼를 모아들여야 하고 이 일에 협조하기를 재촉하는 은유이다(요한10, 12:16, 32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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