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14, 12~14)
동서를 막론하고 잔치의 비중은 두 가지로 가늠할 수 있다. 하나는 누가 초대되었는가이고 또 하나는 얼마만큼 잘 차렸느냐이다. 어떤 잔치에 훌륭하고 높은 사람이 초청되었으면 그 잔치는 빛난다. 이것이 세속잔치의 상식이다. 예수께서는 천상잔치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당신을 초청한 잔치집 주인과 초대 손님에 관하여 대화를 계속하신다.
예수께서 취하시는 대화의 초점은 위에서 말한 세속잔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되돌려받을 기대를 가지고 사람을 초청하는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사람을 초청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초청의 의향이 자애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별로 잘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객이 바뀐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친지가 경조사를 당하면 초청받고 안 받는 것과는 상관없이 찾아가서 부조금을 낸다. 아름다운 풍속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경조금은 언제고 내가 일을 당했을 때 되돌려 받을 기대를 가지고 행한다. 이 주고받는 사회생활 법칙은 순수하게 생각하면 아름답게 생각되지만 주고서 되돌려 받지 못했을 경우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섭섭하게 생각하게 된다면 선행이라 할 수 없다.
예수께서 오늘 가르치는 교훈은 되돌려 받을 기대를 가지고 하는 선행은 세상에서 이미 끝난 교환행위이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장부에는 치부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내가 그렇게 잘해주고 돌보아 주었는데 지금 와서 나를 위해하다니 하며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명심해 둘 복음의 말씀이다.『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 사는 이웃사람들을 부르지 말라. 그러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서 네가 베풀어 준 것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친구 형제 친척 잘 사는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 아니다. 이들을 초청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그들이 너를 다시 초청하여 네 선행을 보상하겠기 때문이라고 한 것인 만큼 이 말씀의 뜻은 보상을 받기 위하여 이들을 초청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회생활에서 초청받고 초청하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풍습이다. 그러나 그 초대의 목적이 보상에 초점이 주어진다면 사랑 베풀음의 장사일 뿐이고 자칫 원한과 미움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세상의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살과 뼈를 깎아 키우면서 자식들에게서 무슨 보상을 바라는가. 늙어서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고도 아무 원한 없이 살아가는 부모들은 성인들의 모습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이와 같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초대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네 가지 종류로 나열하였다. 친구 형제 친척 잘 사는 이웃들. 이 네 종류에 특별히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후에 차라리 초대해야 할 부류 네 종류의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과 어법상 대조를 이루기 위한 구문법에 지나지 않는다. 친구 형제 친척은 따지고 보면 같은 부류이고 잘 사는 이웃은 부자를 말한다. 그러니 친지와 부자 두 종류로 간추릴 수 있고 후자는 가난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두 종류로 간추릴 수 있다.
친구 형제 친척들을 초청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초청하라는 것은 친구 친척 부자 등을 초청하는 것이 나쁘다는 금지명령이 아니다. 가령 72 제자들이 전교하러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복종시켰다고 돌아와 기뻐할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악령들이 굴복되었다고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을 때(루가 10, 17~20) 마귀를 쫓아 낸 행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서도 친구 친척 형제를 부자 이웃들을 초대하여 식사하는 것은 통상생활에서 있는 일이고 잘잘못을 따질 것이 못된다. 다만 이들은 보답으로 초대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니 보답 초대를 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등을 초대하는 것은 진정한 자선 행위이다. 이 행위는 순수한 사람의 행위이며 그 행위에 대해서는 하늘나라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자격을 보존하고 있다.
더군다나 가난한 사람, 절름발이 소경 등은 바리사이파 사람들 사회에서는 죄인 취급을 당하면서 사회적 접촉에서 제외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전 예배에서도 제외되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초대하여 같은 상에서 식사하라는 교훈을 주셨다. 이 초대는 천상잔치 식탁에로의 초대를 모상으로 나타낸 교훈이다. 이 교훈은 산상교훈에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고 한 교훈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는 하느님의 모상을 그 생활에 지니고 있다. 초대교회는 바로 이와 같은 교훈을 실천에 옮기며 주님의 성찬을 재현하는 미사에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형제의식을 가지고 살았다(고린전11, 20~22). 교회모임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과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들은 강조하기도 하였다 (야고 2, 2~4).
예수의 이와 같은 가르침은 당시의 열성종파였던 쿰란공동체의 취지와 전연 다른 가르침이었고 주고 되돌려 받는 고대사회의 사회통념과도 견해를 달리한다. 무보수의 희생은 참다운 보상을 약속받는다. 그것은 모든 이가 부활할 때에 (마카하 7. 9 : 루가 20, 35 : 요한 5, 29 : 사도 24, 15) 의인들이 앉는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사도 20,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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