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려자들을 상대로 2년 정도 이발을 하다 보니 단골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발할 때가 된 분들이 보이지 않으면 하늘나라로 가셨나 하는 생각도 들고 왠지 기다려집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동사할지 모르는 행려자들에게 매주 한 번씩 날짜를 정해 무료로 이발봉사를 해주고 있는 이명자(마르가리따ㆍ47세ㆍ서울 천호동본당)씨는 이발할 때가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올해 일흔 살의 김 노인을 기다리며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내에 위치한 하상 바오로의 집 행려자 식당을 찾는다.
이곳에 이명자씨가 도착한 시각이 오전 11시경, 행려자들에게 제공할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봉사자들과 함께 식당을 찾아온 행려자들에게 대충 식사를 대접하고는 식당 한구석을 차지한다.
이미 먼저 식사를 끝마친 행려자들이 줄을 지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명자씨는 서둘러 가위를 들고 이발을 시작한다.
예쁘장하고 가냘픈 몸매를 한 이명자씨는 이렇게 이발을 시작하면 하루 평균 10명에서 20여명 선, 한 달이면 50여 명에 달하고 지난 91년 2월부터 현재까지 총 6백여 명의 행려자들에게 이발을 통해 이씨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랑을 나눠주고 있다.
『처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냄새와 악취로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제가 많은 것을 얻고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위한 이발 봉사가 저의 귀중한 삶이 된 것 같아요』
하루에 17~18명 정도가 넘어가면 손아귀가 아파 더 이상 가위질하기가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이발소 종업원으로 있을 때보다 더 정성스럽게 이발을 해주고 있다는 이명자씨는 특히『행려자들이라고 또 공짜라고 아무렇게나 머리를 깎는다』는 불평을 들을까봐 더욱 조심이 간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명자씨가 처음으로 행려자들을 위해 이발 봉사를 하게 된 것은 이씨가 세례를 받을 무렵인 지난 8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례를 받기 위해 예비자 교리를 받고 있던 이씨는 영세 대모로 정해진 이정래(루치아ㆍ천호동본당)씨에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없겠느냐고 상의를 드렸고 대모는 그 당시 서울 마천동에 있던「애덕의 집」을 소개하고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권유하면서 이씨의 봉사활동은 시작됐다.
그 후「애덕의 집」이 벽제로 이전하면서 이명자씨는 이곳 하상바오로 식당을 이용하는 행려자들을 찾아 이발봉사를 하게 됐으며 지금은 이곳과 함께 빈민식당인「프란치스꼬의 집」과 장애인 시설인「작은 프란치스꼬의 집」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이명자씨는 여름이면 서울 길동본당에서 나오는 생수를 주위 봉사자들과 함께 매일 아침마다 길러서 행려자 식당에 보내주고 있고 행려자나 불우노인 가정, 장애인 가정 중 거동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이발 봉사를 해주고 있기도 하다.
친절하고 이발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퍼져서인지 청량리에서 왔다는 김영호(비신자ㆍ79세) 할아버지는『친구의 소문을 듣고 이발하러 왔는데 이발 비용도 안 들고 식사까지 하고 갈 수가 있어 계속 이곳을 이용할 생각』이라며『친아버지같이 대해 주고 이발도 참 잘해줘 뭐라 말할 수 없이 고마울 뿐』이라고 칭찬를 아끼지 않았다.
과거 가난 때문에 자녀를 하나밖에 두지 못했다는 이명자씨는 현재 14세 된 아들과 남편 명선칠(아모스)씨와 함께 살고 있으며『일거리가 없어 온 겨울철을 놀고 있는 남편이 건축경기가 좋아져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라면서 나이가 많아 가위질을 못할 때까지 행려자들을 위한 이발 봉사를 계속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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