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ㅊ」본당 신부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해인가 야외미사를 가기로 했는데 몇 주 전부터 야외미사 날은「창조의 신비를 깨닫는 날, 일치의 날, 친교의 날」이며 냉담자도 참여하기 위한 편한 날이니 가급적 많은 신자들을 동원시키라고 신자들에게 강조했었습니다. 우리 교구에서 신자 수나 재정면을 볼 때 당시 60여개 본당 중 꼴찌를 달리던 본당이었기에 워낙 신자수가 적다 보니 이런 기회에라도 많은 냉담자에게 발길을 쉽게 돌릴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야외미사 장소는 본당에서 약 30리 정도 떨어진 경관이 수려한 어느 큰 냇가였습니다. 하루 전날, 젊은 사람들을 야외미사 장소에 파견하여 대형 군용 텐트를 치고 솥을 걸고 인근 민가에서 전기를 끌어 오는 등 준비를 시키고 밤새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일기예보를 들으니 내일 날씨가 심상치 않습니다. 비가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옛부터「입시날은 호되게 춥고 여름방학 날은 비가 온다더니만 내내 멀쩡하다가 하필 내일 비가 온다니!… 어쨌든 기다려보자. 아직 취소하기엔 이르다」생각하고 다음날을 기다렸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야외미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새벽인데도 주일학교 꼬마들이 벌써부터 우산을 쓰고 야외복차림에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자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데 참으로 남감했습니다. 비는 계속 쏟아졌습니다. 신자들의 의견이 분분해집니다. 공소에서도 전화가 걸려옵니다『비가 오는데 어찌하면 좋겠느냐? 신자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옆의 애기 업은 엄마는『이렇게 비가 오면 우리 애기 감기들까봐 난 못간다』고 말합니다. 이때의 본당 신부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농촌 지역인지라 모내기 때문에 날짜를 연기할 수도 없습니다. 모두가 제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가부를 분명히 해야 할 때입니다.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대로 밀고나갈 것인가? 아니면 취소할 것인가?」로 갈등이 생깁니다. 그만 두자니 어린이들의 실망과 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실망이 클 것이고 안 가자니 이 인원이 모여 앉아 식사하고 오락을 즐길 장소도 없습니다.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엔 성당이 너무 작고 세속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장단도 서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결국 내 결정에 따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젠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혼자서「갈까 말까」수없이 망설이다가 결국 결론을 내렸습니다.『야외미사는 예정대로 야외에서 거행합니다. 지금 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는데 그래도 예정대로 실시합니다. 이미 버스도 동원시켜 놓았고 현지에서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으니 지금부터 출발합시다』
결국 버스 3대와 여러 승용차, 군에서 지원받은 트럭들을 이용하여 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텐트 속에서 미사를 봉헌했는데 그렇게 은혜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비가 오니까 신자들이 전혀 흩어지지 않습니다. 비가 안 오면 애기들이 밖으로 뛰어나가고 엄마가 붙잡으러 가고 그러면 분위기가 흩어질 수밖에 없을텐테, 다행히 비가 오므로 애기들까지도 텐트 속에서 얌전히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나니 비가 그치고 햇님이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냇가의 조약돌은 물기를 머금어 맑게 빛나고 푸른 잎은 더욱 싱싱하게 보입니다. 날씨가 덥질 않아 그늘없는 곳이지만 계획을 진행하기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자들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신자들이 저의 결정을 따라 주어 그런 좋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강론의 주제는「나를 따르라」입니다.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인데『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이 큰 빛을 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므로 그 빛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죠.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일치를 강조합니다. 서로가「바오로 파, 아폴로 파, 베드로 파, 그리스도 파」라고 외치면서 갈라져 싸운다고 들었다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뭉치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야지 인간의 말 재주로 복음을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제 뜻을 잃고 만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1독서의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실현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를 부르십니다.『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도 부르셨고 그들은 배와 아버지를 떠나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알아야 할 것은 베드로 형제와 야고보 형제의 믿음의 결단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버리고 즉시 따라갔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애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 사람을 영세시키기 위해 예비자 교리 시간마다 성당에 데려다 주고, 같이 앉아 있어 주고, 끝나면 다시 집까지 데려다 주고 이런 수고를 하는 인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을 거쳐 영세를 시켜도 즉시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왜 그럴까요? 참 생명을 주는 말씀이신 그분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너무도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면에만 눈이 밝아 참 빛이신 그분을 마음속으로부터 깊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원인은 눈앞의 조그만 십자가를 지는 것이 귀찮아 회피하기 때문에 큰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따르는 길입니다. 우리도 그분을 따르겠다고 예수님께 약속했던 사람들입니다. 님 향한 일편단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꾸만 결단을 내리고 도와 달라고 기도드리는 것이 우리의 할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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