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만에 어머니와 저는 ○○여관에서 꿈 같은 모자상봉을 했고 처음으로 어머니 품에 안겨 봤습니다. 그 때의 저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어머니의 가슴을 더듬었습니다. 우리 모자는 오랜시간동안 한덩어리가 되어 할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말없이 울면서 저의 머리를 쓰다듬고 보듬어 주셨습니다. 저는 눈물만 펑펑 쏟았습니다. 어머니에겐 새 아버지와 3남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상상했던 어머니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심장병과 갑상선 중증환자였고 아주 왜소해 보였습니다. 너무 불쌍하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새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원이라니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서울에 올라와 어머니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고민하며 서둘러야만 했습니다 한주일간이나 밤잠도 못자며 고민을 해봐도 그 큰돈을 갑자기 어디서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열여섯살 때부터 가출해서 생활하면서도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새롭게 결심을 되풀이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몸을 도사리지 않고 껌팔이, 구두닦이, 신문배달, 목공소 공원 등 닥치는대로 여러가지 일을 했습니다. 끝내는 목공소에서 일을 하다가 쇠톱에 왼쪽 손가락이 세개나 잘려 나갔습니다.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바르고 착하게만 살아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손가락이 잘린후 크게 생각한 바가 있어서 권투도장에 나가 피나는 연습 끝에 시합에 세번이나 출전한 적도 있었습니다. 과거에 그러하던 저였지만 생모의 딱한 처지를 목격하고 난 뒤 제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무섭게 돌변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다급한 마음에 소주 한병을 마시고 밤중에 치과를 들어 갔습니다. 칼을 들고 돈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제 몸이 왜소하고 어딘가 모르게 서툴려 보였나 봅니다. 내가 칼을 들었으니 가까이 오면 찌르겠다고 협박했지만 아랑곳 않고 그 주인은 나를 덮쳤고 나는 반사적으로 찔렀던 것입니다.
설마 죽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돌아와 밤새도록 기타를 치며 제마음을 달랬습니다. 그 다음날 조간신문을 보고 그 주인이 사망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결코 죽일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누나에게 물어보세요, 저 그렇게 악한 사람 아닙니다. 제가 칼을 든 것은 어디까지나 위협을 주려는 것 뿐이었는데….
저는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장거리 전화로 어머니에게 지금 당장 무조건 내려 갈 터이니 ○○시까지 기차역으로 나오시라고 하고는 황급히 기차로 서울을 떠났습니다.
두번째 모자의 상봉! 그것도 살인범이 되어서 말입니다. 저는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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