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것 하나 주세요』메리놀병원 옆문 앞에 있는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 건넨 말이었다. 2년전 1월초 한국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드리고 말고요. 죄송하지만 제게 고백성사를 좀 주십시요. 먹고 살자니 성탄고백성사도 보지 못했습니다.』엉거주춤하다가 비좁고 행인이 보는 곳에서 성사를 주는데 두번의 손님을 맞아 물건을 팔면서 무사히(?)성사를 주고, 공짜로 주는 쌕쌕 음료수 깡통을 들고 나오면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서민의 애환이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1985년 한국을 방문하는 비행기안에서 17시간동안 12명과 면담하고 고백성사를 주던 인상적인 사건이 생각난다. 정장을 한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후 이번 여행에서 정독하고 싶었던 묵시록을 봉독하고 있는데 얼마전부터 나를 유심히 보던 중년신사가 찾아와 『천주교 신부이십니까? 옆에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하더니 15년의 이민생활, 교회창립과정, 성장하는 교회내의 갈등. 심한 진통, 끝내 받아들여야 했던 교회의 분열, 그리고 10년의 냉담생활을 솔직하고 담담히 이야기 했다. 그리고 다시 신앙생활을 새롭게 하겠다고 다짐을 보여주었다.
이어 나는 사죄경을 기도해 주었고 맛있는 스카치 한잔으로 형제보다 더 진한 우정을 나누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추억들은 나를 항상 새롭게 흐뭇하게 해준다.
이런식으로 미국인 2명, 한국인 10명과 면담을 겸하여 성사를 주고나니 서울공항이 얼마남지 않았다. 제대로 쉬지도 못했고 묵시록도 5장까지 밖에 봉독하지 못했지만 내 영육은 한결 더 건강해져 있었다.
한번은 탑승전에 기도를 했다. 『이번 여행중에는 혼자 조용히 있게 해 주십시요』라고. 기적같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로마서를 전부 읽고 사도 바오로의 생동하는 말씀에 젖어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87년 7월초 1백50명을 이끌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할때는 8시간동안 30여명에게 기내에서 고백성사와 면담을 해 주었다. 정식으로 판(?)을 벌린 셈이었다. 82년부터 87년까지 매달 북미주ㆍ남미ㆍ유럽을 방문하면서 한번씩 피정을 했었다. 84년 7월에는 오후 2시부터 새벽5시30분까지 16시간을 계속하여 성사를 주고도 지장없이 그날 피정을 지도, 가장 길게 고백성사 준 기록을 남겼다.
고백성사에 맛들어 열심히, 사랑을 가지고 임할 수 있게 해 주신 성령께 가끔 감사를 드리면서, 혹시 비안네 성인께서 도와 주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성사안에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ㆍ치유의 능력을 가진 보화가 있음을 확신하며, 곧 완성되면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해드릴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서울 오금동본당주임 여형구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부산교구 초장본당주임 왕영수 신부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