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토마 사도 축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뵙지 않고는 스승의 부활을 믿지 않겠다고 고집하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뵙고『나의 주님、나의 하느님』하고 고백한 12사도 중의 한사람.
그리스도교 전승과 전설에 의하면 카스피해와 페르시아만의 중간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멀리 동인도에까지 왕래하였다고 전한다.
위경인「토마스 행전」에 따르면、목수로 일하면서 선교하다가 인도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함 목수의 연장을 들고 있는 모습을 성화를 통해 자주 보듯、중세에는 건축가와 석공의 주보성인으로 공경받았다.
어쩌면 우리도 토마 사도처럼「보아야」믿는 나약한 인간이다. 토마 사도를 통해 내 모습을 비춰 보고、나도 성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열심히 정진해야겠다.
■ 성 김대건 사제 순교자 대축일
성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는 성인으로 선포된 1백3위 한국순교자들 가운데 맨 앞에 불리우는 첫 한국인 사제이다
1821년 8월21일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과 고우르술라 사이에 태어난 김대건은 모방 신부에 의해 최양업ㆍ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간택되었다.
머나먼 이국땅으로 사제의 길을 닦기 위해 15세의 어린 나이로 부모의 품을 떠난 김대건은 몰아치는 12월 삭풍을 꿋꿋이 이겨내며 요동과 만주、중국대륙을 횡단한 끝에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했다
10여년의 세월을 신학공부와 조국 교회의 복음화를 위해 의지를 달래왔던 김대건은 1845년 8월 상해부근 김가항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귀국길에 오른 김대건 신부는 40여일의 항해끝에 1845년 10월12일 황산포에 상륙꿈에도 그리던 고국땅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깊은 신앙심과 해박한 지식유창한 강론으로 신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김대건 신부는 선교사 영입을 위한 새통로 개척에 나섰다가 관헌들에게 체포、1846년 9월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남달리 성모신심이 강했던 김대건 신부는 일찍부터 종교자유허용과 문호개방을 주장해 민족의 선각자로서도 많은 칭송을 받고 있다.
자기자신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욱 충실히 따름으로써 한국교회의 밀알이 되신 김대건 신부의 삶을 오늘 다시 한번 되새기고 높이 기려 그분의 믿음을 본받아야 하겠다.
■ 성 베네딕도 아빠스 기념
베네딕도수도회의 창시자.
이탈리아의 누르시아 출신인 베네딕도 (480?~550?) 는 로마순례중 타락한 시대의 방종을 목격、20세에 수비아고 (Subiaco)동굴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성인의 덕망을 보고 몰려든 많은 수도자들을 위해 수비아코에 수도원을 설립한 베네딕도는 공동생활을 명백히 규정하고、순명을 최대의 덕으로 삼고、재산의 사유 (私有)를 금지하고、일평생 한 수도원에 머무를 것과 특히 전례를 중요시하고 성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를 것을 명하는 수도회 규칙을 만들었다.
「베네딕도 수도회칙」은 그후 다른 모든 수도회칙의 모범이 되었고 이로써 베네딕도성인은 서구 수도회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였다.
누이동생 성녀 스콜라스티까와 함께 교회에 많은 정신적 보화를 전해준 베네딕도 성인은 543년 3월경 선종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도생활의 증진과 기도생활의 기쁨을 규칙속에서 찾도록 길을 제시한 베네딕도성인의 축일을 통해「규칙안에 사는 것이 하느님 안네 사는 것이다」는 교회의 오랙 속담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자.
■ 성 보나벤뚜라 주교학자 기념
성 보나벤뚜라 주교학자 (1221~1274) 는 성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교회 신학계에 쌍벽을 이루어「세라핌적 박사」로 불리운다.
이탈리아 비테르보 지방에서 태어나 20세때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파리대학을 마치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동대학에서 강의했다.
그후 프란치스꼬회 총장 (1257~1273) 으로 재임 회의 개혁을 주도했고 첼라노의 토마스의 저서를 바탕으로「성프란치스꼬의 생애」를 저술했다,
제2차 리용공의회(1274) 신학 고문으로 초빙、회기중에 세상을 떠난 보나벤뚜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교대 양대신학자로 불리우지만 심미적이고 보수적인、학풍을 고수해 직관적이고 논리적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대조를 이루었다.
■ 성 야고보 사도축일
열두 사도중의 하나이며 제베대오의 아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여 장 (長ㆍ major) 야고보라 불러왔음.
갈릴래아의 어부였으며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44년 헤로대왕에 의하여 죽음을 당함으로써 사도들 중 첫 순교자가 된 사람.
스페인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 (Saniago de Compostela) 에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 성 마르타 기념일
마르타 성녀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베다니아마을의 마리아와 나자로의 형제. 성서에는 마르타란 이름은 루가복음서 (10、38-42) 와 요한복음서 (10、1-12、11) 두곳에 나온다.
마르타는 예수와 당당한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예수를 신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한11、21-22).
마르타는 주님께 대한 지극한 고백으로 하고 라자로를 살리게 하였다.
프로방스지방 전설에 따르면 마르타를 포함한 3명의 형제자매들은 로네강 하구에 상륙하여 살다가 타라스콩 (Tarascon) 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가정주부의 수호성인인 성녀 마르타 축일을 맞아 부지런함과 예수께 대한 꾸밈없던 성녀의 믿음을 본받도록 주님께 청하자.
■ 이냐시오로욜라 사제 기념
예수회의 창립자 이냐시오 로욜라 (1495~1556).
스페인 로욜라 출신인 이냐시오는 일찍 군에 입대、팜펠루나 (Pampeluna) 전투 (1521) 때 부상、병상에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생애에 관한 서적을 읽고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것을 결심、회복후 몬세라트에서 기도와 금욕생활을시작했다. 대부분 몬세라트 은둔생활때 얻은 체험을 저술한「영성수련」 (Exercitia Spiritualia) 이 유명하다.
로마순례와 파리대학 시절 알게된 프란치스꼬 사베리오와 파베르등과 함께 1537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들은 교황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는 수도단체 설립을 청원、1540년 교황 바오로3세에 의해 예수회가 창립됐다. 이냐시오 로욜라는 급성장하는 예수회와 회칙 제정에 전념、회칙을 일생동안 개편하였다.
이냐시오 로욜라의 가장 큰 업적은 예수회를 통해 교회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주도한 점、이교지역의 복음화를 통해 종교개혁으로 타격을 받은 교회를 회복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이냐시오 로욜라 사제 축일을 통해 지칠줄 모르고 굽힐 줄 모르는 예수께 대한 성인의 열정을 닮도록 노력하자.
■ 축일표
☆3일 (金)성 토마 사도 축일
4일(土)푸시타니아의 성 엘리사벳 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5일(日)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 순교자 대축제일
6일(月)성 마리아 고레띠 동정 순교자
11일(土)성 베네딕도 아빠스 기념
13일(月)성 헨리꼬
14일(火)성 가밀로 데 렐리스 사제
15일(水)성 보나벤뚜라 주교학자기념일
16일(木)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18일(土)복되신 동정 마리아
21일(火)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학자
22일(水)막달라의 성 마리아 기념일
23일(木)성 비르지다 수도자
☆25일(土)성 야고보 사도 축일
29일(水)성 마르타 기념일
30일(木)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학자
31일(金)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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