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먹을 갈면서「저 화선지의 여백을 어떻게 채워나갈까」구상하다보면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희망과 묘한 설레임을 느끼게 됩니다』
동양화를 취미로 삼고있는 조정오 신부 (요셉ㆍ전주교구 용머리본당주임) 는『그림이란 것이 혼자하는 작업이 되다보니 혼자있는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어 신부들의 취미생활로는 아주 좋은것 같다』고 말했다.
조신부가 동양화를 처음 대한 것은 69년 대건신학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당시 신학교에서는 주 2시간씩 동양화와 서예를 교양과목으로 강의했다. 동양화는 30여명이 배웠고 석성(碩星) 김형수(金亨洙) 선생이 초청돼 가르쳤다. 69년부터 시작했으니 조신부가 동양화를 그린지는 올해로 23년째가 된다.
그러나 신학교졸업 이후 꾸준하게 그림을 그려오고 있는 이는 많지가 않다.
조정오 신부를 포함해서 김형수 선생을 초빙했던 송현섭 신부 (광주가톨릭대교수) 와 청주 지연동성당주임 연재식 신부 그리고 교포사목중인 현유복 신부(전주교구) 등 4명만이 지금까지 동양화를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본당사목과 동양화를 병행하기가 어려운 탓도 있지만 동양화자체가 갖고 있는 특성에도 이유가 있다고 조신부는 설명한다.『동양화는 어느정도 성장하다가는 오랫동안 답보상태가 지속됩니다. 그러다가 잠깐 발전이 있는듯 하다가는 또 침체기가 지속되지요』즉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런 슬럼프를 넘기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예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조신부 역시 이런 고비를 겪기는 매한가지. 이에 고비를 겪기는 매한가지. 이에 대해 그는『내가 그만한 실력이 있어서라기 보다 그럴때마다 오기로 파고 들었다』고 들려준다.『석성선생님의 그림을 보면서「나는 왜 저만큼 안되는가」하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스승의 그림을 자로 재어보면서 그 구성을 흉내내기까지 했습니다』
또 76년 한국동양화의 본산지라 일컬어지는 전남도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경험도 조신부에겐 남다른 각오로 동양화에 매달리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이듬해인 77년 다시 도전한 조신부는 다른 4작품과 함께 특선에 당선,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밖에 83년 한국현대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다.
동양화의 특성이자 매력은「관념화이면서 사실화라는데 있다」고 조신부는 강조한다. 서양화가 앞에 놓인 사물만 표현하는데 반해 동양화는 그 뒤의 것, 즉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려낸다. 이것을「관념산수화」라 하고 대상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실경산수화」라 부른다. 조신부가 추구하는 영역은「관념산수」이다.
조신부는 공교롭게도 국내에선 작품전을 가지지 못했지만 85년11월 필리핀에서 개인작품선을 연 적이 있다. 84년부터 86년까지 필리핀의 가톨릭교회방송인「라디오벨따스」에 파견돼 활동할때다.
조신부가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20시간. 그나마 본당사목때문에 자투리시간이 대부분이어서 몇차례 중단했다가 재작업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밤작업이 가장 적절하지만 다음날을 생각하면 이것 또한 쉽지가 않다고 한다. 작업도중 버릇이 있다면「한손엔 담배, 한손엔 붓」으로 표현할만치 줄담배를 하게 된다는 것. 하루 한갑반정도인 흡연량이 작업땐 그 갑절은 된다고 한다.
『동양화는 혼자있는 시간을 잘 활용 할수 있다는 이점외에도 다른 운동과는 달리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할 수 있어 좋습니다. 게다가 남들이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고 괜찮게 봐주는 것도 덤으로 얻는 이득이지요』. 또 그림의 소재를 찾으려면 여러곳을 다녀야하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경치도 마음껏 즐기고 그림도 그릴수 있으니 일석이조이라고 조신부는 말했다.
국내의 절경이라 할만한 곳은 거의 다녀봤다는 조신부는 그러나 요즘들어 개발이다 뭐다해서 자연본래의 모습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여유를 갖고 자연을 즐길수가 없고 사람만 들끓고 쓰레기만 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신부는 금년 가을쯤에 그간의 작품들을 모아 개인 작품전을 가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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