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겨냥해 전국 극장가에 외화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5월 하순에 개봉된 폴 베호벤감독의「원초적 본능」을 시작으로 6월하순「리셀웨폰3」「후크」「연인」이 한꺼번에 개봉됐으며 7월들어서도「미녀와 야수」「배트맨 2」「유니버셜 솔저」등 대작과 화제작들이 쏟아져 올 여름은「외화 전쟁」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앞의 작품중 장 자크 아노감독의「연인」만 프랑스영화 (영어로 제작) 일뿐 나머지는 미국영화로 직배도 적지않다. 또 거의가 섹스나 폭력을 소재로 한 오락영화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편당 제작비가 수천만달러씩 투입된 대작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영화들의 전체제작비는 어림잡아도 억달러선을 상회하고, 수입가로 환산해도 천만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시즌에 이처럼 최신의 화제작들을 국내에서 보고 즐길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또 반짝 시즌에 우리돈 80억원에 달하는 외화를 들여다 상영하는 것은「문화의 사치이자 과소비」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물론 선택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 맛 (재미) 있는 음식을 한꺼번에 먹으면 과식이나 소화불량이 되는 것은 문화라고 예외는 아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외제 그것도 새것이나 비싼것들만 선호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외제상품 못지않게 문화까지도 우리의 경제형편은 아랑곳없이 마구 수입해 무역역조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이나 홍콩일변도의 편식현상까지 초래하면서.
사실 우리는 지나치게 미국과 홍콩영화에만 길들여져 흥미만을 탐닉해 왔다. 자극적인 섹스나 피를 보는 폭력 아니면 말초적인 재미만이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러나 영화란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와 삶을 비춰주는 거울일뿐 아니라, 오늘날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사실들을 보여주는 커다란 창이다. 이런 큰 창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고, 인간의 다양한 사고와 형태를 통해 감동을 나누고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 매체가 영화라고 할수있다. 한데 우리는 너무 작은 창을 통해 흥미에만 집착하는데 아닐까.
물론 영화의 오락적 기능은 무시할수 없으며, 현대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재미를 추구하고 스트레스를 풀려는 욕구를 모르는건 아니다. 하지만 재미에도 질이 있어, 양질의 재미를 추구하면 정서도 순화되고 순수한 감동도 맛보지만, 저질만을 탐닉하다보면 점점 강도를 높여야하고 그러다보면 마약처럼 중독현상을 일으켜 정신이 황폐해지고 본능에 의지하게 된다.
여름시즌 외화들을 문제삼는 것도 외화낭비가 문화과소비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그안에 담겨진 내용들이 겉은 당의정처럼 달고 맛있지만, 그속에 담긴 섹스와 폭력이 인간의 본능을 엄청나게 자극하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원초적 본능」이나「연인」은 인간의 성을 소재로한 영화이고「리셀웨폰3」나「유니버셜 솔저」등은 현대과학문명의 테크놀로지를 소재로 하고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폭력의 미학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칸영화제에 나타난 두드러진 경향은 동성애와 근친상간을 다룬 영화들이 많다는 것이었다.「원초적 본능」이나「트윈픽스 (A F K N서도 방영중인 드라마를 데이비드 린치감독이 영화화한 작품) 등도 대표적으로 꼽을만한 것들로, 이는 영화를 시대의 거울이 라고 할때 요즘 세계가 세기말적인 중증에 걸려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영화들은 우리의 윤리나 풍속에 바탕한 심의기준에 위배된다. 따라서 문제된 부분은 잘린채 극장에 상영된다. 결국 우리는 비싼 돈을 주고 사들여와 오리지널도 아닌 기형을 감상하는 꼴이된다. 한마디로 넌센스가 아닐수 없다. 관객들이 어떤 영화를 보던 그건 선택의 자유지만, 적어도 사리있는 분별로「문화의 과소비」나「문호적 사치」그리고 제돈내고 반쪽만 보는「밑지는 장사」라는 소리는 듣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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