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신 하느님 역설
우리는 지난 호에서 이레네오의 생애와 그의 방대한 두 저서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그의 중요한 신학사상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레네오는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원론적 신관(神觀), 즉 구약의 창조의 신과 신약의 구원의 신이 별개의 대립된 신이라는 주장에 대항하여 유일하고 같은 한 분의 하느님(唯一神)을 역설하는 데에 그의 신학의 초점을 집중시키고 있다. 참된 하느님은 바로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로고스」의 성부이심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그는 사변적인 측면에서 성삼위(聖三位)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 안에 나타난 활동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의 존재를 설명한다. 특히 창세기 1, 26에 나오는 『우리의 모상에 따라 사람을 만들자』는 말씀에서 「우리」라는 복수 표현은 성삼위를 입증하는데, 이것은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설명한다.
구약의 창조주 하느님과 신약의 구원의 하느님 사이의 일치에서 필연적으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연속성 또는 일치가 나온다. 이레네오는 유스띠노의 「로고스 그리스도론」에 따라, 로고스이신 성자께서 창조에서 역사하셨으며, 또 구약의 성조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하셨고, 신약에 와서는 인류구원을 위해 친히 육화(肉化)하셨기 때문에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내용을 그리스도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밭에 숨겨진 보화처럼 구약성서 안에 그리스도께서 숨겨져 있으므로, 우리는 구약의 예표(豫表)와 비유(比喩)를 통해 암시된 의미를 올바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을 들어, 하느님께 바쳐지기 위해 장작을 메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간 이사악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하느님께 회생재물로 바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흥해바다를 건너간 것은 신약의 빠스까를 예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수렴사상
이레네오의 그리스도론에서 중요한 개념은 「수렴사상」(收斂思想: recapitulatio)이다. 이 사상은 사도 바오로의 에페1, 10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레네오는 구원론적 측면서 더욱 발전시켰다. 이 사상의 핵심 내용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모습이 파괴되고 손상되었는데,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를 복원시키시며, 더 나아가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 수렴되고 그분을 머리로 하여 완성된다는 것이다. 첫째 아담이 범죄함으로써 전 인류에게 멸망을 초래하였지만,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전 인류의 새로운 창조를 실현시키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야만 하셨다. 왜냐하면 아담이 육신 안에서 범죄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역시 그 육신을 지니시고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다. 이레네오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이 단순히 인간을 범죄 이전의 상태로 복원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첫째 아담은 단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지만, 둘째 아담이신 하느님의 외아들께서는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머리이신 그분 안에 수렴되고 결집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레네오의 이러한 수렴사상은 그의 마리아론에도 깊은 역향을 미쳤다.
유스띠노는 이미 바오로 사도의 로마 5, 12∼21에 기초하여 마리아를 「둘째 하와」로 소개한바 있는데, 이레네오는 이 개념을 그의 수렴사상에 연결시켜 발전시켰다. 하와는 불순종으로 죄와 죽음을 잉태하였지만, 둘째 하와인 마리아는 순종으로 동정성을 간직한 채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함으로써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하와를 해방시킨 것이다.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둘째 하와인 마리아의 경우에도 철저한 보상주의 원칙이 작용한다. 즉 인간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타락하여 범죄한 과정과는 반대방향으로 보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새 하와인 마리아가 새 아담인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참으로 모든 「산 이들의 어머니」가 되며, 따라서 인류의 새로운 어머니로서의 보편적인 모성을 지니게 된다.
교회론과 수위권
그의 교회론 역시 수렴사상과 연관되어 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뿐 아니라 미래까지를 포함하여 수렴시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온 교회의 머리로써 세상 끝날 때까지 구원의 새 창조사업을 계속 이루신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는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 즉 거룩한 전승위에 세워지고 계승되기 때문에 사도적 계승이 없는 이단자들의 교회는 진리의 은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레네오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에 의해 세워진 로마교회의 사도적 정통성을 강조한 다음 로마교회의 수위권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모든 교회 즉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신도들은 이(로마) 교회가 지니고 있는 강력한 수위권(Potentiorem Principalitatem) 때문에 이 교회와 일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로마) 교회 안에는 그들을 통해 전해오는 사도적 전승이 항상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반론3, 3, 2). 로마교회의 권위는 사도적 전승이 항상 잘 보존되어 있다는 데에 있으며, 그 이유는 가장 위대한 두 사도인 베드로와 바오로에 의해 세워지고 증거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다른 교회들은 로마 교회와 일치하고 통교를 나눌 때에 사도적 전승을 보다 확실하게 보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